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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서 주일과 교회 - 임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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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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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성서주일 하면 성서공회의 주일이라고 생각하여 성서주일을 지키지 아니하여도 아무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해에서 온 생각으로 곧 고쳐야 할 생각이다.

성서주일은 성서공회의 주일이 아니라 성서의 주일 곧 우리 구속과 영생을 얻는 길을 주는 성서를 기념하는 주일이다. 성서주일은 성서공회가 생기기 전에 벌써 지켜온 주일이다. 성서공회가 생겨 성서 출판을 전문으로 하게 된 후에는 성서주일과 성서공회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생기게 되었지마는 성서주일은 여전히 성서의 주일이요, 성서공회의 주일은 아니었다.
 
성서주일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1년 52주일 중에 한 주일을 택하여 성서의 의의와 성서가 주는 은혜를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하여 정하여 놓은 주일이다. 이 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의 뜻, 그 오묘하고 감격한 뜻을 생각하고 그 성경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입고 영생에 들게 되고 부활하게 되었다. 그 성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갖게 되고 또 우리는 영원히 새로워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은혜가 감사하고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성경을 더욱 친하게 되고 성경을 더욱 정성과 열심을 받쳐 읽게 된다.

성경의 존재를 감사하는 중에 성경을 출판하여 우리에게 공급하는 성서공회를 생각하게 되고 그 기관의 보존을 위하여 적은 정성의 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주일에 들어오는 헌금을 성서공회에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은혜를 감사하다가 생긴 일이지, 결코 성경은 제처 놓고 성서공회를 위하는 생각만으로 생긴 일은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교회나 신자는 성서를 기념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서에 대한 사랑이 커 가고 또 성서를 읽고 그 뜻대로 사는 일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성서공회를 기념하거나 말거나 그것은 큰 일이 아니지마는 성경을 기념하고 아니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존폐 문제요, 우리 신자의 신앙생활의 사활문제다. 성경을 모르는 교회, 성경을 모르는 신자, 생각만 하여도 모골이 송연하다.

사하라사막을 여행하는 이들은 예전에 있었던 큰 도시의 폐허를 볼 수 있다. 거기는 훌륭하게 지었던 예배당 터도 있다. 그러나 터만 남았지 기독교에 대한 산 흔적은 없다. 여러 사람들이 알아낸 사실은 거기 교회에는 거기 말로 번역된 성경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경이 없는 그 교회는 허물어지자 터만 남고 교우들은 뿔뿔이 헤어지자 기독교 신앙을 찾을 길이 없어졌다. 그러나 아프리카 동쪽 바다에 있는 어느 섬에는 교회가 흥왕하고 성경도 있었다. 중간에 핍박이 심하여 교회는 황폐하고 신자는 숨어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핍박이 지나고 다시 자유의 시대가 될 때에 교회는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신자들이 성경을 가졌었기 때문에 그 고난 중에도 그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 성경을 읽는 중에 신앙―그리스도의 참된 신앙을 간직할 수가 있었던 까닭이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공산당이 점령하고 다스리거나, 무신론자가 집권하고 횡포하거나―그것은 아무 상관없이 성경을 가진 교회, 성경을 가진 신자는 그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께 향한 충성심은 언제든지 식지 아니한다.

성경을 가진 교회, 성경을 가진 신자는 적그리스도가 와도 분별할 수 있고 사이비(似而非) 신학이 범람(汎濫)하여도 속지 아니한다. 겨같이 불려 다니고 갈대같이 쏠리기 잘하는 교회나 신자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을 모르니깐 표준이 없고 성경을 모르니까 판단력이 없다. 그래서 줏대 없고 용기 없는 교회나 신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서주일을 맞는 우리는 이 주일의 뜻을 깊이 깨달을 것이다. 깨닫고 성경 읽기를 게을리 말 것이다.

교회가 살려면 성경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성경으로 그 신도를 가르치고 인도하여야 한다. 성경으로 그 신도의 생활지침, 그 사업지침을 삼게 하여야 한다. 교회는 무슨 일에든지 성경을 위주로 하여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한다. 그래야 교회는 능력을 얻어 살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신자로의 생명을 가지려면 성경을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중하게 여겨야 한다.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얻은 영감으로 모든 활동의 동력을 만들 것이다. 성경은 어떤 생활의 부문에는 필요하여도 다른 부문의 생활에는 필요치 않다고 하는 분리주의를 가져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우리 생활 각 부문에다 산 힘을 주는 원기소다. 성경을 따라 생활하면 어떤 생활에서나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옛날 책이라 현대에는 맞지 않는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새 능력인 것을 모르는 말이다. 변론으로 이런 생각을 반발하려는 것보다는 성경을 살므로 그 능력을 보이는 것이 좋은 웅변이 된다.

성서주일에 교회와 신자는 성경의 의의, 그 고마움, 그 은혜를 기념하고 새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현대 한국을 살펴보면 물질적으로는 큰 발전을 하였다.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자동차가 길을 메게 다닌다. 입은 옷이 자르르하고 먹는 음식이 기름지다. 한국이 물질적으로 발전하지 아니하였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도덕면, 그 정신면을 보면 어떠한가?
매일 신문에 큼직큼직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여 주는지 알 수 있다. 도덕이 썩고 정신이 삐뚜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정직하게 부지런히 일하여야 먹고 살기가 힘 든다. 그러니까 어떻게 쉬운 길을 찾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 나머지 도둑질을 하게 되었다. 도둑질까지는 아니하여도 속이기를 여반장으로 한다.

속이지 못하는 사람만이 못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속이는 일이 크면 도둑질이 되는 것이다. 도둑질이나 속이는 것은 자기가 갈 정당한 길을 가지 않고 얻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정의와 등진 것이다. 여기에 복 받을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는 성서주일을 지키게 된 것이다. 성경의 뜻과 그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기념하면서 현대의 모든 추악한 형편을 살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때처럼 필요한 때가 또 있는가 하고 느끼지 아니하는가?

이 모든 사회적 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가르쳐 줄 사명을 가진 교회와 신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말씀으로 깨끗하여진 교회와 신자는 이 사회적 병을 진단할 수 있고 또 그 병을 고칠 처방을 낼 수 있다. 그 진단의 방법과 그 진단으로 만들 처방은 다 성경에 있다. 이 성경을 기초로 삼고 있는 교회와 신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성서주일에는 교회와 신자가 다함께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고 교회와 신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전하는 데 선후가 없고 당파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주를 위하는 일편단심만 가지고 현대사회의 도덕병에 대한 희생적 책임을 느끼면 된다. 주를 위하여 이 사회를 깨끗이 하여야 하겠다는 아무 사심(私心)없는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성서주일을 맞아 우리 교회는 그 사명을 다 하였는가 반성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있는지 살피고 그 말씀을 전보다 더욱 더 친하고 사랑하기를 맹세할 것이다.

(출처: <성서한국>1998년 3월 16일 11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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