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들이 전한 복음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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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2-21본문
대한성서공회 문서선교사 최정선 장로
대한민국은 권서들이 전한 성경으로 복음의 씨앗이 자라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복음 강국으로 성장했다.
스코틀랜드의 존 로스 선교사는 1877년, 만주의 심양에 자리를 잡고, 쇄국정책으로 묶여있는 조선에 이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전할 방법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존 로스 선교사는 조선문 근처에서 눈망울이 맑은 이응찬과 백홍준, 서상륜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는 “조선에는 언문이라는 한글이 있다는데 그 글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심양으로 세 사람들이 인도되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존 로스 선교사는 이들에게 열심히 한글을 배워 누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했고, 조선에 복음이 전해진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누가복음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이들의 땀과 수고로 번역이 완료되었고,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재정지원을 받아 인쇄에 들어갔다. 1882년, 기나긴 세월의 수고로 드디어 누가복음이 완성되었다.
누가복음은 빨래터의 아낙네들에게 권서들의 손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성경을 받은 이들은 부엌에 간직한 보리와 감자, 강냉이를 대신하여 값을 치렀다. 의주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권서 서상륜은 서울까지 복음을 전하고 그 발길로 1884년에 동생인 서경조의 요청에 의해 황해도 소래로 가서 성경을 가르치며 가정교회를 세워나갔다. 이로써 이 땅에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가 1885년경에 설립되었다.
1895년, 영국은 서울 종로에 대영성서공회 조선 지부를 설립하였고, 스코틀랜드와 미국성서공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다가 1979년, 대한성서공회는 재정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대한성서공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문서 선교사를 세워 옛날 권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하였다. 문서 선교사들은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해 나가고 있다.
<한국교회 초창기 권서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