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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만나다

『새한글성경』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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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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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 위에서 만난 새로운 풍경

 

저의 책장 한편에는 여러 권의 『개역개정』 성경이 놓여 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모서리와 손때 묻은 표지의 낡은 책도 있고,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여러 자료와 주석이 함께 담겨 있는 해설성경도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모국어인 한글로 쓰여 있지만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성경은 좀 어려워야 제맛’이라는 근거 없고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문장이 주는 묵직한 울림이 좋았고, 조금은 낯설고 어려운 단어들이 세상과 성경 사이의 거룩한 선을 그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처음 『새한글성경』으로 창세기를 펼쳤을 때의 당혹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저에게 너무나 명료하고 일상적인 문장이었습니다. 제게 익숙했던 “태초”라는 단어가 품고 있던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무게감이나, “천지”라는 말이 자아내던 광활한 우주적 상상력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철학적 묘사는 “땅은 거칠고 비어 있었다”라는 마치 과학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듯한 건조한 문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적잖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성경의 고유한 권위가 일상의 언어와 만나 어딘가 경건함이 옅어진 듯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특히 레위기에서 “번제물”을 “다태우는제물”로, “유월절”을 “넘는명절”로 풀어 쓴 대목에 이르러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신학적 함의가 증발해 버린 것 같았고 신앙의 언어가 마치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더 가깝고 따뜻해진 하나님의 숨결 하지만 그 낯선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면서, 저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 4:19

『개역개정』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새한글성경』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뒤따라오세요. 그대들을 사람 건져 올리는 어부로 삼겠어요.”


『개역개정』 속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에 거스를 수 없는 왕의 위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엄 있는 목소리에 제자들이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라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의 예수님은 “나를 뒤따라오세요.”라고 전혀 다른 어조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존중과 초대의 온기가 담긴 이 부드러운 ‘해요체’ 문장은 제 신앙의 관점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들이 기꺼이 자유의지로 동행하기를 청하고 계셨습니다. 권위적인 주님이 아니라, 눈을 맞추며 함께 걷자고 손 내미시는 따뜻한 스승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매우 친밀한 고백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22

『개역개정』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새한글성경』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몸의 형태로 예수님 위로 내려오셨다. 또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너야말로 사랑하는 내 아들이야. 난 네가 좋아.”


『개역개정』에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온 우주를 향한 엄숙한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새한글성경』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야말로 사랑하는 내 아들이야. 난 네가 좋아.” 이 지극히 친밀한 고백 앞에서 저는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공적인 선언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자랑스럽고 내밀한 속삭임이었습니다. 저 멀리 하늘에 계신 초월자가 아니라, 바로 곁에서 어깨를 감싸 안으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명료함이 주는 통찰의 은혜

이사야 42:18 『개역개정』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새한글성경』 (하나님) “듣지 못하는 사람들아, 들어라! 보지 못하는 사람들아, 눈을 부릅뜨고 잘 보아라!

이사야를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예언자의 탄식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인지 헷갈려 맥락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새한글성경』은 “(예언자)”, “(하나님)”과 같은 화자 표시를 통해 이 모든 혼란을 단번에 해결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이사야는 더 이상 난해한 독백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언자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생생한 드라마로 재탄생했습니다.

또한 “맹인”, “다리 저는 사람”과 같은 과거의 표현들이 “시각장애인” 또는 “보지 못하는 사람”, “지체장애인”으로 바뀐 것을 보며, 시대의 언어와 감수성을 끌어안으려는 치열한 노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맞춘 단어 교체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도 인격적으로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번역의 그릇에 담아내려는 따뜻하고 신학적인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안개가 걷힌 듯, 선명함이 주는 기쁨

이제 제 책상 위에는 『개역개정』과 『새한글성경』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새한글성경』 을 통해 익숙함이라는 안개에 가려져 있던 말씀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합니다.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현대적이라 경건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 낯섦 덕분에 더는 말씀을 기계적이고 관성적으로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으며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묻고 서로 다른 번역이 만들어 내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개역개정』이 제게 깊은 묵상과 경건한 기도의 언어를 가르쳐 준 신앙의 뿌리라면, 『새한글성경』은 그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가 다음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힘껏 뻗어 나가는 새로운 희망의 언어입니다. 옛길이 주는 묵직한 안정감과 새길이 선사하는 선명한 설렘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지금, 저의 신앙 순례길은 이전보다 한층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두 목소리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저는 오늘도 변함없는 진리의 깊이와 넓이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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