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글성경』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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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3-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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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책장 한편에는 여러 권의 『개역개정』 성경이 놓여 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모서리와 손때 묻은 표지의 낡은 책도 있고,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여러 자료와 주석이 함께 담겨 있는 해설성경도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모국어인 한글로 쓰여 있지만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성경은 좀 어려워야 제맛’이라는 근거 없고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문장이 주는 묵직한 울림이 좋았고, 조금은 낯설고 어려운 단어들이 세상과 성경 사이의 거룩한 선을 그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처음 『새한글성경』으로 창세기를 펼쳤을 때의 당혹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저에게 너무나 명료하고 일상적인 문장이었습니다. 제게 익숙했던 “태초”라는 단어가 품고 있던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무게감이나, “천지”라는 말이 자아내던 광활한 우주적 상상력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철학적 묘사는 “땅은 거칠고 비어 있었다”라는 마치 과학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듯한 건조한 문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적잖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성경의 고유한 권위가 일상의 언어와 만나 어딘가 경건함이 옅어진 듯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특히 레위기에서 “번제물”을 “다태우는제물”로, “유월절”을 “넘는명절”로 풀어 쓴 대목에 이르러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신학적 함의가 증발해 버린 것 같았고 신앙의 언어가 마치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더 가깝고 따뜻해진 하나님의 숨결 하지만 그 낯선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면서, 저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 4:19
『개역개정』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새한글성경』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뒤따라오세요. 그대들을 사람 건져 올리는 어부로 삼겠어요.”
『개역개정』 속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에 거스를 수 없는 왕의 위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엄 있는 목소리에 제자들이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라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의 예수님은 “나를 뒤따라오세요.”라고 전혀 다른 어조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존중과 초대의 온기가 담긴 이 부드러운 ‘해요체’ 문장은 제 신앙의 관점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들이 기꺼이 자유의지로 동행하기를 청하고 계셨습니다. 권위적인 주님이 아니라, 눈을 맞추며 함께 걷자고 손 내미시는 따뜻한 스승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매우 친밀한 고백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22
『개역개정』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새한글성경』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몸의 형태로 예수님 위로 내려오셨다. 또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너야말로 사랑하는 내 아들이야. 난 네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