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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연재] 기막힌 그 말씀 (12) "한결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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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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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기독공보」 인터넷 판 2025년 10월 30일자에 게재된 연재물  [기막힌 그 말씀] <12>(https://www.pckworld.com/article.php?aid=10842539611)를  한국기독공보사의 허락을 받아 옮겨 적은 것입니다.

 

‘한결같은 사랑’, 기막히게 좋은 번역어입니다. 새한글성경에 232번이나 나옵니다. 구약에 205번, 신약에 27번 나옵니다. 공동번역에서 처음으로 20번, 뒤이어 새번역에서 40번 정도 구약에서만 썼던 표현입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다섯 배, 열 배 이상으로 자주 썼습니다. 그 원어인 히브리어 낱말 ‘헤셋’을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게 번역하지 않고 근본 뜻을 따라 한결같이 번역한 결과입니다. 신약에서도 그리스어 낱말 ‘엘레오스’나 그 뿌리가 되는 동사 ‘엘레오’를 번역하면서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최신 구약 히브리어 사전에 따르면, ‘헤셋’은 쌍방 관계가 잘 유지되도록 성실하게 처신함을 뜻합니다. 실제로는 주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말로 쓰입니다. 사람이 거듭 하나님을 배신할지라도 사람과 맺은 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공동체로든 개인으로든 거듭거듭 고백합니다. “주님은 주님이 구해 내신 백성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출 15:13).”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이 땅에 가득합니다(시 33:5).”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영원합니다(시 138:8).” “나의 하나님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맞아 주시는구나(시 59:10).”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낫거든요(시 63:3).”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시 13:5).”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나와 함께합니다(시 66:20).”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을 영원히 내가 노래하겠습니다(시 89:1).” “여호와는 기뻐하십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에 희망을 두는 사람들을(시 147:11).” 이런 경우에 개역개정에서는 ‘한결같은 사랑’ 대신에 주로 ‘인자하심’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또한 바로 그 한결같은 사랑에 기대어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합니다. “이집트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 백성을 용서해 주셨듯이, 주님의 크고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 백성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민 14:19).”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따라 나를 살려 주십시오(시 119:88).” “아침에 내게 들려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 이야기를(시 143:8).” “아침에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해 주십시오(시 90:14).”

 

거기에 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도 한결같은 사랑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 없이 바치는 제물은 하나님이 바라지 아니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결같은 사랑이지 희생제물이 아니기 때문이다(호 6:6).” 이 말씀은 예수님도 인용하셨습니다(마 9:13; 12:7).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드러냅니다. 사무엘상 20:14~15에서 요나단이 다윗에게 하는 말에서 이를 똑똑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네가 나에게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네. 내가 죽는다고 하세. 그래도 나의 집에 대한 자네의 한결같은 사랑을 자네가 끊어 버리는 일은 영원히 없어야 하네. 여호와께서 다윗의 원수들 하나하나를 이 땅 위에서 끊어 버리실 때도(삼상 20:14~15).”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듯이 다윗도 요나단과 요나단의 후손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결국 요나단과 다윗의 놀라운 우정은 그저 친한 벗 사이의 각별한 정이나 호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은 자신이 요나단에게 한 약속을 지킵니다. 왕이 된 후에 말합니다. “혹시 아직도 사울 집안의 사람이 있소? 그렇다면 그 사람한테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려고 하오(삼하 9:3).”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잘 돌봅니다.

 

이런 벗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욥에게도 들었나 봅니다. 이해하기 힘든 재난을 당해 괴로움을 겪는 욥을 위로하러 찾아 온 벗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엘리바스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들은 욥이 대답하면서 말합니다. “절망한 사람에게는 벗의 한결같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네.”(욥 6:14)

 

신약성서에서는 노년의 사도 바울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입에 올립니다. “이전에 나는 하나님을 모독하던 사람, 박해하던 사람, 시건방진 사람이었네. 그런데도 주님이 나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셨네. 내가 믿지 않을 때 모르고 그렇게 했기 때문이지(딤전 1:13).” 유다가 써 보낸 편지(유다서)에도 한결같은 사랑이 두 번 언급됩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결같은 사랑을 바라면서 기다립시오(유 1:21).”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유 1:22).”

 

박동현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은퇴, 새한글성경 구약 책임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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