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7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목록

말씀을 만나다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을 발간하면서

박동현(대한성서공회 상임번역자문)누가복음 2:28-3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2:21-40… 시므온에게는 그의 품 안에 있는 아기가 약속의 성취와도 같다. 메시아가 주실 구원, 곧 하나님의 평화가 이 아기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뒤에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활동은 예언자의 약속에 걸맞게 온 세상을 향한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빛이요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빛이시다.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누가복음 2:21-40 단락 해설 중『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본문에 해설을 붙인 것으로, 해설은 『취리히성경해설집』(스위스취리히 개혁교회 총회, 2010년 발간)의 대부분을 한국 교회와 사회의 형편에 알맞게 편역한 것입니다.  『취리히성경해설집』은 취리히 개혁교회가 발간한 안내서로서, 1524–1531년에 스위스 독일어로 번역된 『취리히성경』의 2007년 개정판을 개인과 교회가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집필한 것입니다. 이 해설집 집필자들은 대부분 스위스 개혁교회 학자들이고 그 가운데는 목회 현장이나 교회 기관에서 봉사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21세기 초까지 놀랍도록 발전해 온 성서학의 열매를 일반 독자들도 맛볼 수 있도록 성서학의 최근 경향까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접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내용도 거침없이 소개합니다. 성경의 각 책, 각 본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여러 본문 사이에 차이 나는 부분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다룹니다. 그러면서 성경 전체와 각 책의 흐름과 짜임새에 비추어 각 부분이 지니는 뜻을 알려줍니다. 이 해설에서는 신구약 각 책의 기본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설 첫머리에 도표를 제공합니다. 개별 단락 해설에서는 먼저 개역개정판 본문을 제시하고 뒤이어 해설문을 넣었습니다. 부록에는 신학 용어 해설 340여 항목, 도량형 및 화폐 단위 설명, 컬러 지도 등 여러 참고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때로는 새롭고 낯선 내용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설과 함께 본문을 잘 읽어보면, 신앙과 경건의 폭이 넓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학문적인 내용도 심도 있게 제공함으로써 설교 준비와 연구에도 도움을 주며 일반 성도들에게는 성경 공부를 하는 다양한 방법을 익힐 수 있게 합니다.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지역 교회들, 또 한국 교회 전체와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더 풍성해지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만나다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송영윤(포천중리교회 담임목사)    <포천중리교회 성도들>하나님 말씀을 새로 듣게 되다니!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성경이 번역되는 일은 교회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신앙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설레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우리말 바로 쓰기에 힘쓰신 이오덕 선생님은 글보다 말이 먼저고, 말보다 삶이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삶에서 말이 비롯되듯이 글은 말하듯이 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그렇게 했네요. 말하듯이 쓰여서 좋습니다. 읽기 편하고 얼른 이해됩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사도들의 말투가 느껴져서 어쩐지 그 자리에 있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존댓말을 쓰시네요!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습니다. “따님!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어요. 평안히 가세요. 병의 고통에서 놓여나서 건강하게 지내세요.” (막 5:34)제가 마치 출혈병에 시달리던 여자라도 된 듯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실 때는 엄한 분위기가 확 살아납니다. “지금 당신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쟁반의 겉은 깨끗이 하고 있소. 그러나 당신들 속은 빼앗으려는 욕심과 악함으로 꽉 차 있소. 분별없는 사람들!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시지 않았소?” (눅 11:39-40)그동안 가나의 결혼식 이야기를 읽을 때,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어딘지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그 대목을 “저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어머니?”라고 번역하여 새롭게 이해할 가능성을 열어 주었네요. 원문을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아직 소개된 적 없는 것으로 번역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을 때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한다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번역 원칙이 이런 경우인가 봅니다. 거북한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말씀의 의미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바울 사도가 쓴 서신서는 진짜 편지를 받은 기분이 듭니다. 특히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편지, 이른바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은 정이 묻어나네요. 더는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조금 쓰시게. 위장과 그대가 자주 앓는 병을 생각해서 말일세. (딤전 5:23)아들에게 신앙의 소중한 유산을 하나하나 정답게 일러주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나는 디도에게, 곧 공동의 믿음에 따라 나의 참된 아들인 그대에게 이 편지를 보내네. (딛 1:4)그러므로, 아, 내 아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지시게. (딤후 2:1)시편에서는 도치문이 자주 눈에 띄어 좀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원문의 어순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살리기 위한 번역이라는 대한성서공회의 설명을 들으니, 도치된 문장의 뜻을 다시 생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번역에서는 시인의 감탄이 대번 느껴졌어요. 보세요, 얼마나 좋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가요, 형제자매 함께 하는 것이! (시 133:1)새해를 맞아 주일마다 짧은 문제지를 교우들에게 드리고, 거기에 답을 달며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읽기 쉽다며 좋아들 하시네요. 교우들의 소감입니다. “전에는 성경통독을 다짐하고도 일주일도 못 넘겼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괜스레 뿌듯합니다.” “대화는 큰따옴표, 생각은 작은따옴표가 쓰여서 읽기 좋아요.”『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읽으면 그대로 이해된다는 점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만나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으로 청년들과 함께 말씀 행진~!

 최재선(영락교회 청년부 목사)  청년들과 함께할 겨울 수련회를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친한 지인 목사님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의 기나긴 기간 동안 젊은 청년 세대들은 모이지 못하고, 봉사나 선교도 나가지 못하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예배하고 교제하는 힘들고 메마른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시기를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의 가장 최고의 본질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년들의 영혼과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고 채워질 수만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이며 설레는 영적 사건이 될 것인지 생각만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가장 먼저, 기도하며 청년부 임원들과 이러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청년 공동체의 성경통독에 대한 도전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함께 읽는 일에 거부감을 갖거나 거절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청년들을 참여시키고, 실제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시간을 공동체와 형제자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일련의 시간을 거쳐, 겨울 수련회가 진행되기 바로 전까지인 2022년 2월 7일(월)에서 24일(목)까지 총 18일 동안, 주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9시 30분에 온라인 Zoom으로 청년들이 함께 모여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으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독하자는 데 결론이 모아졌습니다. 정말 우리 영락 청년 공동체를 위하여 번역된 것과 같이, 젊은 세대를 위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적시에 출시가 되었기 때문에 기쁨은 배가되었습니다.  <온라인 Zoom으로 진행된 성경 통독 사진>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온라인으로 통독하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접근하니 모두의 마음이 기대감으로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청년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 무장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행진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영적인 비전과 푯대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먼저, 통독할 4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장수를 살펴보니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요한복음 21장, 사도행전 28장으로 총 117장이었습니다. 따라서 18일 동안 통독하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6-7장을 읽어야 했습니다. 청년 임원들은 총 117장을 통독하기 위해 각 장을 읽을 117명의 청년들과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멘토단)을 섭외하였습니다. 한 사람당 한 장씩 실시간 온라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성경 본문의 장을 읽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영락 청년들의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통독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늦은 저녁 시간, 직장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청년들이 몇 명이나 참여할까 걱정 반 기대 반의 시간을 초조하게 보냈지만,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을 말씀의 자리로 인도해 주셨고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매일매일 생각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 말씀을 통독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녁 9시 30분에 시작된 통독은 최소 1시간에서 평균 1시간 30분 정도, 저녁 11시까지 매일매일 진행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청년들과 함께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통독하면서 느낀 점은 마치 살아 있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은 생동감과 몰입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태 신앙인으로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해 왔던 청년들도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와 새로운 감동으로 채워졌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으로 번역된 하나님의 말씀이 청년들의 입술을 통해 온라인으로 전달되어 퍼져 나갈 때 받은 공동체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의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통독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만나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학부 수업,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간담회 개최

 임성욱(연세대학교 교수)  2022년 5월 10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필자의 학부 수업인 ‘텍스트와 해석’ 시간에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번역연구소 이두희 소장의 발표>  먼저 수업 전반부에 이두희 소장(대한성서공회 성경번역연구소)의 발표를 통해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의 의미를 소개하는 시간이 진행되었다. 이두희 소장은 우리말 성경 번역의 역사와 성경 개정의 필요를 중심으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출판의 역사적인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각각의 성경 번역서마다 주안점이 다른데, 특히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경우에는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번역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였다. <간담회 참석자들의 모습>  다음으로 수업 후반부에 필자는 조지윤 국장(대한성서공회 성경번역연구소)의 협조 아래 연세대학교 학부 학생들이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읽고 그 번역에 대해 평가,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60여 명의 수강생들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마가복음 1장, 로마서 1장, 디모데전서 1장을 차례대로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자신들이 느낀 점을 솔직하게 발표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탈권위적인 번역이 예수님의 실제 사역에 더욱 적합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또 다른 일부 학생들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젊은세대에게 친근한 좋은 번역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은 이두희 소장이 강조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번역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 수업을 통하여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번역의 주요 독자층인 디지털 다매체 시대의 젊은 세대가 직접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기존의 성경 번역과 비교하며 읽으면서 새로운 성경 번역의 의미를 느끼고 공유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앞으로도 대한성서공회와 현장 사이의 생생한 대화가 기대되는 바이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   

말씀을 만나다

가브리엘

가브리엘 ㅡ​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들의 탄생을 고지 <판데르 베이던(R, van der Weyden)의 그림>히브리어 : gabriel뜻 : 하나님의 강한 자’ 또는 ‘하나님은 강하시다.성경에 나오는 이름이 있는 천상적 존재가브리엘은 미가엘을 제외하고는 성서에서 이름을 들어 지칭하는 유일한 천상적 존재입니다. 후기의 문서들에는 라파엘과 우리엘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브리엘은 구약성서에서는 <다니엘>에 나타나며 신약성서에서는 <누가복음>에 나타납니다. 다니엘이 자기가 본 환상, 곧 두 뿔을 가진 숫양이 외뿔을 가진 숫양에게 패배당하는 장면이 나타난 환상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람처럼 보이는 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브리엘아, 이 사람에게 그가 본 것을 설명해 주어라.’(단 8:16하) 다니엘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다니엘에게 그 환상의 의미를 알려 주었습니다. 메대와 페르시아의 왕들은 마게도냐 알렉산더 대왕에게 굴복당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왕국은 결국에 그의 네 후계자들 사이에서 나누어질 것이다. 환상에서 본 바와 같이 그렇게 숫염소의 외뿔은 부러지고 이어서 새로운 네 개의 뿔이 돋아날 것이다.다니엘이 저녁 제사를 드릴 무렵, 자기의 죄와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지난번에 환상에서 보았던 그 천사가 다니엘이 있는 곳으로 급히 날아 왔습니다(단 9:20-21). 그는 다니엘에게 예루살렘이 70년간 폐허 더미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풀이해 주었습니다. 종말에 대한 다니엘의 꿈을 풀이해 주려고 온 ‘사람의 모습을 띤’(단 10:18) 그 존재 또한 가브리엘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환상을 본 사람에게 환상을 풀이해 주기 위하여 천사가 등장하는 것은 구약성서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에서처럼 하늘의 사자에게 이름을 붙여 지칭한 것은 대단히 드문 현상입니다.아들의 출생을 미리 알려준 가브리엘<누가복음>에는 가브리엘이 두 번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아들의 출생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성전에서 분향하는 의례를 집행하는, 나이 많은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고, 그 다음에는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천사는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이름을 말해 줍니다.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의 아들은 (세례) 요한이라 부르고, 마리아의 아들은 예수라 부를 것이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말했다. ‘나는 가브리엘이오. 나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자들 가운데 하나인데, 당신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소.’(눅 1:19) 누가의 이야기는 이전에 성서에 나온 천사 현현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삼손의 출생도 천사가 알려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천사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창세기와 포로기 이전의 성서의 문서들에서 천사들은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사람들 가운데 가시적인 것으로 형상화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이름은 붙여지지 않았습니다. 포로기 이후 시대에 생긴 <다니엘>과 같은 유대교적 문서들에서는 천사들이 이름을 가진 독자적인 존재들로 등장합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전승은 일곱 천사 또는 대천사들에 관해서 말하는데, 이들은 모든 천사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임재 곁에 머물고 있는 존재들입니이다. 성서 정경에 채택되지 않은 후대 문서인 '에녹 1, 2서'에서는 가브리엘이 그러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 밖의 다른 전승들은 가브리엘을 최후 심판의 날에 나팔을 부는 천사로 표현합니다.Redaktion: Falko Spiller, Die Menschen der Bibel: Ein illustriertes Lexikon der Heiligen Schrift, 김창락 역,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2014 중에서.

설교자료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성경 : 민수기 13장 30-31설교 : 김명헌 목사(의림교회)     오늘의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가 ‘a study of history’라는 역사학에 관계되어진 책을 기술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문명권을 21개의 문명권으로 나눈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이 문명권들이 어떻게 생성되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번영을 이루는지, 어떻게 쇠퇴하는지, 침체하는지, 해체되어지는지 등 여러 과정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독특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패턴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게 되는데, 타성에 젖은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은 사회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항상 창조적인 소수였음을 21개 문명권을 통해 똑같은 패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을 기록하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에 관계되어진 이 패턴들은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 세계 교회의 역사도 동일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생성되어졌는가, 또 어떻게 성장해갔는가, 어떻게 쇠퇴해갔는가, 그리고 어떻게 침체해 가는가, 나중에 교회 문을 어떻게 닫았는가 하는 것까지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생성되었다가 쇠퇴하고 사라져간다면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은 항상 있습니다. 창조적 소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놀드토인비가 역사를 바라볼 때에 몇 가지 도전 상황이 있습니다. 그 도전은 열악한 땅, 새로운 땅에 대한 현실이 도전이 됩니다. 갑작스러운 외적의 침입, 지속적인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 이런 도전들을 어떻게 응전하는가하는 문제가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이라고 하는 새로운 땅에 대한 도전이 나타났습니다. 기존에 있던 땅에 대한 척박함이 있습니다. 출애굽 한 다음에 광야에서 그 척박한 시간을 견뎌야했습니다. 아낙 자손들, 광야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노예생활을 하다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공격해 옵니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도전에 대해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1절처럼 이야기 합니다. 대중들은 타성에 젖은 익숙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창조적인 소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대한성서공회가 하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방관합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중들의 관심과 대한성서공회의 관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남에게 성서 주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120개국에 23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진 성경을 인쇄해서 나누어주는 데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성서공회가 세워진 후 창의 끝과 같이 창조적인 소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무관심이 있었지만 땀 흘린 사람들, 눈물 흘린 기도, 그리고 피까지 흘린 사람들의 헌신 때문에 대한성서공회가 오늘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개신교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신교도 우리가 복음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땀 흘리고 피 흘리고 목숨 바친 사람들의 헌신 때문에 오늘 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서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없이 많은 땅에 대한 도전, 외세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대한민국이 이토록 성장하는 데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할 때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 순위 중 꼴찌에 해당되어질 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 경제 대국에 들어설 정도로 대한민국이 성장할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대한성서공회를 통하여, 눈물 흘리는 새벽기도의 권사님들을 통하여, 창의 끝과 같은 작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세상과 한국교회는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담대하게 신앙의 고백을 외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십만명입니다. 그 수십만명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따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중은 관심 없습니다. 대중은 협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대중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지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소리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3500년 전 광야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를 듣는다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올라가겠다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아니면 대중과 함께 정신 나간 일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대중에게 현혹당합니다. 내 앞길만 생각하여 정신 나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대중의 편협되어진 소리에, 타성에 젖은 소리에 익숙해져있는 이유는 있습니다.   33절을 보면, ‘거기서 내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열두지파의 대표 열두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옵니다. 중악 산악 지대의 길을 톻해 이스라엘을 정탐하고 오는데, 거기에 아낙 자손들의 후예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쟁하면 100전 100패입니다. 이런 사고 속에는 31절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31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사람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는 그들이 보기에 메뚜기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성서공회가 120개 나라의 234개 언어로 인쇄를 하여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과가 오기까지 이렇게 될 것을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루십니다. 끊임없이 세상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믿음에는 역사가 따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칭찬을 합니다. ‘당신들은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망의 인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대한성서공회의 믿음에는 역사라 따르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큰 교회를 이루는 것, 꿈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헌신으로 누군가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면, 나의 헌신으로 누군가가 예수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헌신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한 나라 한 민족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진다면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 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어떻게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135,000명의 미리암 군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올 때, 기드온 용사는 3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놀드토인비가 40년의 대작을 마치면서 딱 한소리 합니다. “세상은 도전과 응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끊임없는 도전 속에 믿음의 응전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택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뜻을 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2년 8월 23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모잠비크와 태국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설교자료

살리는 말씀

성경 : 시편 119편 49-50설교 : 안희성 목사(평안교회)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미사일 공습으로 시작된 두 나라 간의 전쟁이 어느덧 벌써 4개월여가 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언론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처럼 보금자리가 파괴되어 갈 곳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다치고 전쟁 참전과 피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TV로 전쟁의 소식을 보고 듣는 우리가 보기에도 그 참상과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실제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돕는 손길들이 가까이 국경을 맞대고 이웃해 있는 나라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각계각층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의 손길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원은 식량, 의류, 약품, 돈, 무기 등 일상의 삶에 필요한 구호품들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전쟁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내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한편에서는 전쟁의 고통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것 같으면 실제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이나 의류, 돈과 같은 구호품들을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구호품들이 당장 여러 가지 부족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에 필요한 것들은 채워지면 어느 정도 부족함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또 부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신의 부족함은 물품들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공허하고 두렵고 불안한 생각과 마음은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 없고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떠한 것보다 그들의 영혼의 갈증과 부족함은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무너진 건물과 집은 다시 세우면 되고 부족한 것들은 채워 넣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워진 영혼의 고갈은 전쟁이 끝이 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과 영혼의 평화는 세상 물질로 채워질 수 없고 오직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에서 주님이 만난 여인은 외롭고 영혼이 고갈된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들의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었고 물질로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나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도 결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하고 외로웠던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고 인생의 참 만족과 행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함 가운데 있는 그들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그들 안에 있는 공허함과 두려움과 불안함은 사라지고 주님의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고백했습니다. 자신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시편 기자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난 중의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말씀이 자신을 살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망과 위로,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소망과 위로입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가운데 현지 주민이 전한 말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러시아가 무수한 미사일과 대포로 전쟁과 상관없는 국민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중했던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게 함으로써 절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드는 이 고통 속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하고 일상의 삶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진정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들에게 참된 소망과 진정한 위로를 주고 그들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생명이시고 부활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고 그들을 살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고 그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그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위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에 그들은 다시 소망을 갖게 되고 위로를 경험하고 살리심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담긴 이 성경이 그들의 손에 들려지게 되고 눈으로 읽게 될 때에 모든 영혼들이 되살아나고 구원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2년 6월 28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말씀을 만나다

새터민 대학생들도 말씀을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에 감사하며 -  박인희(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강사)2021년 11월, 대한성서공회에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성경이 꼭 필요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사 년 전부터 이화여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 공부를 하는 새터민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과의 만남은 처음에는 영어 성경 공부로 시작되었습니다. 탈북민 출신으로 이화여대에 들어와 남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이 친구들에게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습니다. 남한 친구들도 쉽지 않은 영어 수업이 새터민 친구들에게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섬기고 있는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새터민 친구들과 영어 공부도 하고 성경 공부도 하는 작은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화여대 대학교회의 새터민 성경 공부 모임>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때로 영어 성경보다 우리말 성경이 더 어려운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기존의 성경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와 문장을 사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개역 성경이 익숙한 저와 같은 신앙인들에게는 한문 투가 적당히 섞인 우리 옛글 성경이 왠지 정겹습니다. 성경의 고어적인 표현들은 어릴 적 고향 교회의 어르신들을 떠오르게도 하고, 옛 신앙의 선조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새터민 친구들에게는 이런 옛글 성경들이 오히려 잘 와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한국말인데도 성경책은 어려워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문화적 차이나, 또는 고대세계에 관한 지식이나 유대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러려니 짐작했는데, 정작 친구들의 문제는 성경의 언어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남한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옛 성경 역본들이 정답게 느껴질 수 없었고, 자칫 고루하거나 심지어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어투들은 오히려 성경을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지던 때,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바로 제가 찾던 성경이었습니다. 특히 존칭을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보다 본래의 예수님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새터민 친구들은 물론, 제 강의를 들었던 외국 유학생들에게도 이 성경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한 중국 학생은 서양 역사를 공부하다가 혼자 성경을 읽고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된 친구였는데 이 책을 받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유난히 어학 실력이 좋았고, 신앙심도 깊었지만, 이 친구도 한국말 성경책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특히 시편은 우리 옛말의 운율과 가락을 모르고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워 한국말로 된 성경은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좋은 성경을 선물하고 싶었던 차에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참 좋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지난여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가면서 이 성경을 소중히 챙겨 갔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성경 공부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우리 새터민 친구들은 지금은 저 없이도 자체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성경을 읽는 모임을 벌써 이 년 가까이 이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도, 못 만나는 슬픔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지친 마음도 견디고, 학업의 고달픔도 저녁에 조용히 모여 성경을 읽으며 이겨냅니다. 그러던 가운데 몇몇 학생들은 벌써 졸업도 했고, 원하던 회사에 취업도 했습니다. 서로 말씀으로 격려하며 대학 생활을 해나가는 우리 새터민 친구들의 아름다운 삶을 보며, 저는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디지털 링크로 편리하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아무 때나 주님의 말씀을 읽으며,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새터민 친구들에게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좋은 동반자가 됨에 감사드립니다. 

게시물 검색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