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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만나다

니고데모

 그리스어: nikodemos 뜻: ‘백성의 승리자’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만 언급되는데, 경건한 유대 사람이자 유대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공회 의원이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요한은 니고데모가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보도하지는 않는다. 니고데모는 밤에 처음으로 예수를 찾아왔다(요 3장). 몇몇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밤중의 만남은 예수의 동시대인들이 처해 있던 정신적 암흑 상태를 비유한 것이라 한다. 또는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그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후에 예수께서 초막절에 사람들 모르게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했을 때에, 니고데모는 예수를 체포하고자 하는 유대 지도자들에 맞서서 예수를 보호했다(요 7:51). 마지막으로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다음 장면에 등장한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메시아의 시신을 동산에 있는 한 무덤 굴에 안장했다. 신중한 니고데모가 과연 실제로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었을까? 4세기에 생겨난 ‘빌라도 행전’(또는 ‘빌라도 문서’, ‘니고데모 복음서’)이라는 저서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예수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행했다는 이유로 빌라도 앞에 고발된다. 니고데모는 모인 사람들 앞에 나서서 예수를 변호한다. “예수는 유익하고 위대한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기적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아무도 행하지 못한 것이며 앞으로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밤중 촛불 아래에서 니고데모가 예수와 함께 구약의 말씀과 새로운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출처: Deutsche Bibelgesellschaft, ed., Die Menschen der Bibel: Ein illustriertes Lexikon der Heiligen Schrift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2014),  295-296 중에서(편역: 김창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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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성경: 로마서 10장 13–15절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오늘 이 시간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이 자리는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성경반포사역의 파트너로서 얻게 된 첫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어 성경을 제작해 성경을 목말라하고 있는 그 땅, 이란으로 보내는 뜻 깊은 자리입니다.   우리 서울광염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따라 성경반포라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해외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도와 성경을 반포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반포사역을 우리교회에 주신 일로 여기고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우리에게 주시며 이 사역의 귀한 파트너로 대한성서공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사역을 해 오고 있는 귀한 기관입니다. 성경이 필요하지만, 자체적으로 성경을 제작할 수 없는 나라에 성경을 제작 반포하는 사역을 대한성서공회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성경반포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가치 있는 사역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들을 어떤 사람들이라 이야기합니까?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른 채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얻기 위해 열심히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만 결국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입니다.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그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구원의 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과 길을 찾지만, 그 어디에도 참된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은, 그리고 바울은 구원받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13절에서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합니다.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주인이 되실 뿐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상관없이 이 땅의 모든 사람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값없는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식입니다.그런데 이 복음은 인간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안에 숨겨진 구원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나타내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입니까? 전도를 통해서입니다.오늘 본문 1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 기쁜 소식, 복음을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전파하기로 정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친히 인간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스라엘 땅 전역을 걸으시며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이 전도의 사역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증거했습니다.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그 예수님을 입으로뿐만 아니라 글로 증언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성경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증언하는 구약과 오신 메시야를 증언하는 신약을 통해 우리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나게 됩니다.이 성경이 가는 곳곳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한 달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이신 호재민 목사님이 주일 저녁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 땅에 성경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귀츨라프와 토마스 선교사들과 같은 분들을 통해 이 땅에 성경이 전해졌습니다. 또한 존 로스와 피터스를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그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또한 영국, 미국,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가 이 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우리말로 된 성경이 반포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이 어둠의 땅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인 로마서 10장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람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소명을 품고 이 땅에 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고 제작하여 반포하였습니다. 그들을 통해 이 땅에 좋은 소식, 복된 소식,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 귀한 열매를 지금 우리가 먹고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축복하십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축복하십니다. 이들의 헌신과 땀과 열정은 하나님 앞에서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 귀하고 복된 사역을 한국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이 복음을 세계에 전파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성경을 전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 달 전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조현삼 목사님과 함께 대한성서공회의 파주 제본공장을 방문해 받은 감동이 큽니다. 우리 한국 땅에서 세계 다양한 언어로 쓰인 성경이 제작되어 세계 곳곳에 반포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출판 인프라가 열악해 성경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없는 나라들에게 성경을 무료로 보급하는 귀한 사역을 한국교회와 함께 대한성서공회가 그동안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이제 우리 서울광염교회도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대한성서공회를 파트너 삼아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증식을 하는 서아시아 이란으로 보내는 페르시아어성경 1,770부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말라가시어성경 7,000부, 남미 볼리비아에 스페인어성경 6,000부, 아프라카 탄자니아에 스와힐리어성경 9,600부, 그리고 남아프리카 말라위에 치체와어성경 6,462부 등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동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5개국에 3만 권이 넘는 성경 제작 반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서울광염교회 성도님들이 드린 십일조와 헌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이 말씀으로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 그리고 한국교회를 축복하길 원합니다. 좋은 소식,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아름답다'고 칭찬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인 줄 믿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섬기시는 한분 한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동안 성서공회에서 수고한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상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일원으로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대한성서공회와 함께해 나갈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7월 6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이란 페르시아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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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생애와 성경

성경 :  히브리서 11장  23-26절설교 : 조병우 목사(김천제일교회)    모세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면서 출생도 죽음도 아주 특이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모세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광과 고난을 다 겪은 인물이다. 왕궁과 광야에서 극단적 대조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환경에서 살았고,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았던 인물이고 가장 귀한 지위와 가장 천한 지위를 다 가졌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계시를 기록하게 하심으로써 모세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믿음과 충성의 모델과 같은 사람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영광스러움은 하나님이 한 인생의 삶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다. 모세는 이런 면에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산 사람이다.   1. 모세에게는 두 어머니가 있었다.한 어머니는 바로 공주이고 다른 한 어머니는 요게벳이다. 바로 공주는 세상적으로 볼 때 가장 완벽한 어머니이다. 가장 좋은 것을 자녀에게 다 줄 수 있는 어머니고, 요게벳은 자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어머니이다.   두 어머니는 다 귀한 분들이다. 그런데 말씀에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 공주의 아들로 칭함을 거절했다고 했다. 왜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을 포기했던 것일까, 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을 다 줄 수 있는 어머니고 다른 한 어머니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어머니인데 왜 세상 것을 줄 수 없는 어머니의 아들로 살았던 것일까?   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을 다 줄 수 있지만 믿음은 줄 수 없는 어머니이고 다른 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 수 있는 믿음을 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인생에게 진정한 어머니는 세상의 것을 많이 줄 수 있었던 어머니가 아니라 그 자녀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들려주고 말씀을 들려주어서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어머니가 있다. 자식에게 믿음을 물려줄 수 있는 어머니와, 세상의 것을 물려주면서도 믿음은 물려주지 못하는 어머니이다. 성경을 보면 한나는 자식에게 세상 것을 물려주는 어머니가 아니다. 성전에서 자라게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어머니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공주 같은 어머니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하는 부모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부모에게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어릴 때 말씀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마귀는 미래 세대를 파괴하기 위해서 어린아이를 학살한다. 애굽 왕 바로는 어린 아기를 죽였고, 헤롯도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의 유아들을 학살했다. 이유는 미래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일벌과 여왕벌은 똑같이 암벌이다. 그러나 여왕벌은 왕대에 넣어서 로열젤리를 먹이면 여왕벌이 되고 꿀만 먹이면 일벌이 된다. 같은 벌인데 일벌은 28일-35일 생존하는데, 여왕벌은 3년-5년의 수명을 가진다. 200만 마리의 알을 낳아서 다음 세대를 계승시키는 것이다. 다른 벌이 아니다. 그 차이는 태어났을 때에 무엇을 먹였느냐 하는 데 있다.   어릴 때에 말씀의 로열젤리를 먹이면 그가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서 역사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고, 세상의 꿀을 먹이면 평생을 일에 속한 생명으로 사는 일벌로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좋은 부모는 그 부모의 하나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내 자녀가 그 부모가 섬기던 하나님을 부를 때에 그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응답이 되어야 하고 삶의 가치관이 되어야 한다.   2. 모세에게는 두 가지 삶이 있다.말씀에는 모세 앞에 두 가지 삶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나는 애굽의 모든 영광과 보화를 누리는 삶이 있고, 다른 하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보화보다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귀한 삶으로 생각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봄’이라고 했다. 삶에는 분명히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한 삶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는 삶이 있다. 모세는 세상의 영광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상주시는 삶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삶은 사명 때문에 영광이 있는 것이지 소유 때문에 영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삶에 사명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자기가 갈 길을 찾은 사람이 된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사명의 길로 묘사를 했고 그 삶을 다 달렸을 때 면류관의 영광이 있음을 말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삶이다. 성도는 아무리 애굽의 보화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다고 하더라도 사명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다.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는 성막과 장막의 동행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장막은 그들이 사는 공간이다. 언제나 성막과 장막은 함께 움직이고 함께 머물렀다. 그 동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인생의 동행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돕는 사람이 있고, 구경꾼이 있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이고, 곁에서 돕는 사람이 직분이다. 구경꾼은 알지만 영광이 없다. 뒤에서 방해하는 사람은 발꿈치를 무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계시록의 교회를 보면 방해꾼이 없는 교회는 없다.   3. 모세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120년 인생의 소원이다. 그런데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죽었다. 마치 결승점 앞에서 넘어진 것 같다. 한이 많은 죽음 같다. 모세는 자기가 소원하던 것을 눈앞에 두고 죽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인다.   그런데 모세의 죽음 이후의 모습이 나타나는 장면이 성경에 있는데,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 곁에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간 엘리야와 그리고 광야에서 죽은 모세와 함께 천국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자리에 엘리야와 모세를 세우셨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을 율법과 선지자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그 대표가 모세와 엘리야인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인생의 진정한 보상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말씀이 약속하시는 진정한 보상이라는 의미이다. 모세는 자기의 사명을 물려주고 죽었다. 즉 모세의 죽음은 사명을 물려주는 계승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모든 영광을 다 누리고 죽는 죽음이 있다. 이런 죽음을 볼 때 다 복이 있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볼 때 부자는 인간적으로는 복된 죽음을 죽은 사람이지만 음부에서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하며 물 한 방울을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모세의 죽음은 사명을 물려주고 죽은 죽음이다. 바울의 삶도 그렇다.주님의 십자가도 그렇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사명을 물려주고 간 사람이다.삼성병원에서 만든 ‘청진기’라는 영상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의 몸에는 60조 개에서 100조 개의 세포가 있다고 한다.이 모든 세포는 다 각각 다른 수명이 있는데 90% 이상이 매년 사라지고 새로 재생된다고 한다. 5년의 주기로 보면 거의 모든 세포가 사라지고 새로 태어난 세포가 그 자리를 채운다.   백혈구 14일, 적혈구 3개월, 피부 1개월, 장기는 4개월, 새로운 세포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세포는 건강한 몸이 되기 위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야 하고 옛 세포는 끝없이 죽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현상을 ‘히포토시스’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몸에 남아서 암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나 교회나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지 않으면 그것이 암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명은 물려주어야 건강한 교회가 유지된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사명을 물려주셨다.   모세의 죽음이 위대한 것은 죽음을 통해서 자기의 사명을 물려주었다는 점에서이다. 인생에게 죽음이 끝이 아닌 이유는 사명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의 돌비(십계명)를 물려주고 떠났던 사람이었다.    출처 : 대한성서공회 제136회 정기이사회 조병우(김천제일교회 담임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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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뇨

구레뇨 ㅡ 그리스어: kyrenios 뜻: ‘구레네 출신자’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구레뇨는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와 디베료(티베리우스) 치하에서 중요한 관직들을 맡았다. 그렇지만 그는 누가복음의 성탄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져 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눅 2:1-2).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사건들이 이미 헤롯 대왕의 시대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현대 역사가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좀 더 오래된 자료, 예를 들어 타키투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스트라보 등의 자료를 보면, 한결같이 헤롯 대왕이 기원전 4년, 곧 구레뇨가 시리아(수리아)의 총독이 되기 대략 10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다만 요세푸스는 로마의 인구 조사가 구레뇨 재직 초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구레뇨는 기원전 51년에 태어나 로마 군대에서 그의 인생행로를 시작했다. 아마도 그는 기원전 31년에 악티움 해전에 참가했을 것이다. 이 해전은 아구스도의 승리로 끝났으며 구레뇨는 그 다음 10년을 스페인에서 복무했다. 기원전 14년에 그는 크레타와 키레네의 로마 총독이 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마르마리카 족속으로 알려진 광야의 노략자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2년 후에 그는 로마의 원로원이 되었다. 기원전 6년에 구레뇨는 밤빌리아-갈라디아 지방으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은 로마 제국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었다. 그는 반란군을 진압하는 원정에서 여러 번 성공하여 로마로부터 명예와 관직을 얻었다. 기원후 2년에 그는 황제 아구스도의 손자인 가이우스 시저(또는 가이우스 카이사르)의 수석 자문관으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아구스도의 양자 디베료가 황제 지위의 합법적 상속자로 부상했을 때 구레뇨는 디베료의 진영으로 옮겨갔다. 기원후 6년에 구레뇨는 시리아의 총독이 되었다. 그의 권한 영역에는 유대 땅도 들어 있었다. 당시 유대 땅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폭정으로 온갖 미움을 받던 헤롯 아켈라오가 아구스도 황제에게 쫓겨난 후였다. 아구스도가 죽고 기원후 14년에 디베료가 황제가 되자 구레뇨는 다시금 로마에서 디베료의 돈독한 신임을 받았다. 기원후 21년 구레뇨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성대한 장례식이 공개적으로 치러졌다. 이 사실은 그가 마지막까지 디베료의 호의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누가복음에서 언급된 인구 조사가, 시리아에서 구레뇨의 활동 초기인 기원후 6, 7년에 실시되었던 인구 조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의 선임자인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의 통치 아래 실시되었던 인구 조사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사투르니누스의 인구 조사는 기원전 9년 혹은 기원전 6년에 실행되었다. 구레뇨가 이미 시리아 총독의 자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누가복음에서 총독의 이름을 실수로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당시의 비문도 있다고 한다. ▲ 구레뇨(눅 2:1-2)가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여행했다. 세르비아의 깔레니치(Kalenic) 수도원에 있는 프레스코 그림(15세기). 출처: Deutsche Bibelgesellschaft, ed., Die Menschen der Bibel: Ein illustriertes Lexikon der Heiligen Schrift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2014), 335 중에서(편역: 김창락).

말씀을 만나다

[새로운 번역 성경] <새한글성경>(가칭) 시편을 중심으로

  ― [새로운 번역 성경] <새한글성경>(가칭) 시편을 중심으로 ―박동현 (대한성서공회 <새한글성경> 구약 책임번역자)   대한성서공회에서는 다매체 시대의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주로 젊은 세대를 염두에 두고 여러 해 전부터 <새한글성경>(가칭)을 번역해 오고 있습니다. 이 성경의 새로운 점을 시편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새한글성경>은 원어 성서에 이전보다 한층 더 가까워졌습니다. 1) 인쇄된 겉모습이 눈으로 보기에도 달라졌습니다. 이를테면 시편처럼 시(詩)라는 사실이 분명한 본문은 그 점이 드러나도록 줄을 바꾸어 가며 번역했습니다. 시편 첫 절에서부터 그렇습니다.복 있습니다,   그릇된 사람들의 의논 따라 걷지 않는 사람은!  죄짓는 사람들의 길에 서지 않고  비웃는 사람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2) 히브리어 본문의 어순을 되도록 살려서 번역했습니다. 시편 3장 7절을 봅시다.일어나십시오, 오, 여호와님!   나를 구해 주십시오, 오, 나의 하나님!주님이 치셨습니다, 내 모든 원수의 뺨을요. ‌  그릇된 사람들의 이빨을 주님이 부러뜨리셨습니다.상반절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하나님께 간구하는 말을 앞세우고 나서야 하나님을 부릅니다. 사람이 무엇을 부탁할 때 보통은 부름말을 앞세운 뒤에 부탁하는 말을 합니다. “오, 여호와님, 일어나십시오!”는 보통 상황에서 점잖게 하는 기도라면 “일어나십시오, 오, 여호와님!”은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원문의 어순이 번역문에 반영되면 원문의 분위기까지 전달됩니다. 독자들이 본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하반절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합니다. 먼저 주님이 ‘치셨’다는 점을 말씀드린 뒤에 무엇(‘내 모든 원수의 뺨’)을 치셨는지를 밝힙니다. 다음으로는 주님이 무엇(‘그릇된 사람들의 이빨’)을 대상으로 삼으셨는지를 말씀드리고 나서 주님이 그것을 ‘부러뜨리셨’다고 합니다. 한데 묶어 보면, 주님이 치시고 부러뜨리셨는데, 그 대상은 ‘내 모든 원수의 뺨’과 ‘그릇된 사람들의 이빨’이라는 것입니다.3) 시편에는 표제도 절 수에 넣었습니다. 또 표제를 본격적인 시와 마찬가지로 존중하여 괄호 안에 넣지 않았습니다. 다만 ‘표제’ 다음에 한 줄을 띄어 시 본문과 구별했습니다. 시편 5장 1-2절을 봅시다.1 ‌1)찬양 인도자에게 맞춤. 피리 반주. 노랫말(시). 다윗의 것.    2)내 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오, 여호와님! 관심 가져 주십시오, 내 한숨짓는 것에.2 ‌3)주의 깊게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는 소리를, 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주님께 내가 기도하니까요.  1)히브리어 성서를 따라 여기서부터 1절로 적음2)히브리어 성서에서는 2절3)2-12절이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3-13절2. <새한글성경>은 성서학의 최신 연구 결과와 최신 외국어 번역본들을 최대로 활용한 번역 성경입니다. 시편 1장 6절을 봅시다.여호와가 알고 계시거든요, 올바른 사람들의 길은.   그릇된 사람들의 길은 사라질 것입니다.‘올바른 사람’과 ‘그릇된 사람’을 이전 한글 번역본들에서는 각각 ‘의인’과 ‘악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올바름’과 ‘그릇됨’은 사람의 윤리적인 잣대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학의 최신 연구 결과와 최신 외국어 번역본들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 잘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들먹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자신의 이익을 폭력을 써서 기어코 얻어 내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입니다.3. <새한글성경>은, 원문이 길 때 여러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한 성경입니다. 한 문장이 16어절, 50글자를 넘지 않고, 한 문장에 한 가지 뜻을 담도록 번역한다는 원칙에 따라 번역한 성경입니다. 요즘에는 내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화면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 세대가 특히 그렇습니다. 이분들은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을 더 좋아합니다. 글도 짧게 씁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서 되도록 짧은 문장으로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시편 첫머리부터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시편 1장 1-3절이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죽 이어져 있는 하나의 문장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우리 어법에 맞추어 번역하면 문장이 길고 복잡해집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시편 1장 1-3절을 여섯 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했습니다. 4. <새한글성경>에는 새로운 번역어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1) 앞 2번에서 알아본 ‘그릇된 사람’과 ‘올바른 사람’은 새 번역어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이처럼 쉬운 한글 표현을 새 번역어로 쓰면서 그 내용의 차원을 한껏 높여서 거룩한 뜻을 담은 전문 용어로 만들었습니다.2) 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를 시편 8장 3-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3 ‌내가 보곤 하거든요. 주님의 하늘, 주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들을요.       달과 별들도요. 주님이 마련해 두신 것들입니다.4 ‌사람이 무엇이라고 그를 기억해 주시며,      인간이 무엇이라고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5 ‌주님은 그를 조금 모자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영광스러움과 존엄함이라는 왕관을 그에게 씌워 주셨습니다.6 ‌주님은 그에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주님 두 손으로 만드신 것들을.      모든 것을 두셨습니다, 그의 발아래에.밤하늘의 달과 별들을 보면서 시인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뜻을 새기며 감격합니다. 이는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하나님이 사귀실 만한 상대로, 하나님과 비슷한 자리에 이르도록 높이셔서 임금처럼 온 누리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8장 5절에서 한자말이지만 젊은 세대도 이해할 수 있는 ‘존엄함’이라는 새 번역어를 씁니다. 독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3) 시편 4장 7절에서도 새 번역어가 하나 눈에 띕니다.주님이 주셨습니다, 기쁨을 내 마음에, ‌  곡식과 햇포도즙이 많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을!‘햇포도즙’으로 번역된 원어 ‘티로쉬’는 원래 발효시키기 위해 짜 놓은 포도즙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이 원어가, ‘포도주’를 뜻하는 일반적인 원어(‘야인’)와 나란히 쓰일 때는 ‘새 포도주’로 번역했고(호 4:11), ‘곡식’과 ‘(식물성) 기름’과 함께 나올 때는 그냥 ‘포도주’로 번역했습니다(신 7:13). 이처럼 <새한글성경>에서는 같은 범주에 속하는 여러 원어는 서로 다르게 번역하지만, 같은 원어도 문맥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번역합니다.   5. <새한글성경>은 개별 본문의 특성에 맞추어 여러 가지 마침꼴을 썼습니다. 1) 원문의 어순을 따라 도치문을 많이 쓰면서 한 줄의 앞부분은 ‘~입니다’를, 뒷부분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읽은 시편 4장 7절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2) 한 편의 시 안에 시인의 말 상대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로 바뀌면 문장의 마침꼴도 그에 맞추어 다르게 번역했습니다.6. <새한글성경>은 괄호를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했습니다.1) 시편 3장 2절의 ‘셀라’ 다음의 괄호 안에 칠십인역의 번역어인 ‘악기의 간주’를 적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원어 ‘셀라’의 뜻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원어를 우리말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2) 시편 3장 1절의 ‘노랫말’ 바로 뒤에 ‘시’라는 전통 번역어를 괄호 안에 적어 두었습니다. 새 번역어가 낯설 경우에는 독자들이 당황하지 않게 하려 한 것입니다.3) 위 5번의 2)의 경우에도 시 한 편 안에 말의 상대가 다른 부분을 각각 ‘기도’와 ‘혼잣말’과 ‘사람에게 하는 말’로 괄호 안에 표시해 두었습니다.  7. <새한글성경>은 성서학의 최신 연구 결과와 성서 번역의 최신 경향을 반영하면서 새 길로 나아간 성경입니다. 1) 다매체 시대 상황에 맞추어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고, 2) 원문의 어순을 살려 원문의 강조점을 더 잘 드러내고, 3) 새 번역어를 사용하여 원문 이해의 폭을 넓히고, 4) 문학 유형에 따라 여러 마침꼴을 썼습니다. 그처럼 원문에 더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한글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설교자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베드로전서 1:18–25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파트너가 되어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하여 갖는 세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이기 때문입니다. 3이란 숫자는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서로를 신뢰하며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반포하는 귀한 사역에 동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또한 이 귀한 사역에 헌신하는 대한성서공회의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 7월 이란으로 페르시아어성경 1,770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9월에는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 등 아프리카 3개국에 각 나라의 언어로 제작된 4만 권이 넘는 성경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으로 스페인어성경 18,000여 부를 보내게 됩니다. 이로써 총 8개 나라에 6만 여권의 성경책을 반포하게 되고 현재도 4개의 나라에 성경을 보내기로 확정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서울광염교회 성도님들과 대한성서공회가 하나 되어 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사역에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을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만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내 생명과 존재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신을 찾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있다, 저기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힘과 능력 그 자체로는 결코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보여주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거듭남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성경을 온 세계에 반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였던 베드로는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1장 21절에서 이 편지를 받는 이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어떻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영광 받으신 그 사건은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증거이자 계시입니다. 생로병사라는 실존의 한계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죄사함과 구원과 거듭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 주어진 것입니다.사도 베드로는 18-2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18-20)."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인간의 타락과 범죄함에 있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는 은이나 금 같은 재물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선행이나 고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인 열심이나 의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만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속죄함을 위해 바쳐진 그 동물과 제물은 불완전한 것이었고, 완전한 제물과 완전한 제사를 통한 완전한 죄사함과 대속을 바라보고 소망케 하는 그림자이자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완전한 제물이신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인 말세에 이 땅에 ‘성육신'하심으로 우리들을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죄사함과 대속함을 위한 완전한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제물 삼아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깨끗게 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이 십자가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온 세계에 반포하고자 하는 이 성경입니다.마지막으로 사도 베드로는 23-2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능력입니까? 거듭남의 능력입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바로 이 성경에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품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거듭나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됩니다. 이 영생과 거듭남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것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고,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마치 풀과 꽃처럼 언젠가는 마르고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썩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하지 않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 말씀입니다. 시대와 세월을 초월하여 영원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힘써 전하고 반포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후원하여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반포되는 스페인어 성경은 남미의 네 나라인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파라과이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성경을 통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그 땅에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그 땅에 전파되고 그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10월 19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니카라과, 볼리비아, 파라과이, 페루 스페인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설교자료

생명을 얻게 하는 책, 성경

성경: 요한복음 20장 30–31절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지난 7월에 이곳에서 이란으로 보낼 페르시아어 성경 1,770권에 대한 기증감사예배를 드렸는데, 2달 만에 두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지난 6월에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10개국에 총 7만 권이 넘는 성경을 제작 반포하기로 하고 그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아프리카의 세 나라인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에 보낼 성경이 제작 완료되어 이를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뜻 깊은 자리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각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각자의 언어로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한다는 사실입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말라가시어 성경을, 탄자니아에는 스와힐리어 성경을, 그리고 말라위에는 치체와어 성경을 각각 제작하여 반포하게 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한성서공회의 권의현 사장님과 호재민 총무님을 비롯한 직원분들과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우리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성경반포사역의 파트너가 되어 성경이 필요하지만 자체 제작이 어려운 나라에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이 사역은 참으로 귀하고도 값진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생명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하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특정한 문화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문화와 언어와 민족을 초월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이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책마다 우리의 삶에 이런저런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 어떤 책도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지 2천여 년이 흘렀지만, 이 시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 역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반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러하기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친히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 영생이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성경 66권 중 한 권인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자신이 왜 이 책을 기록했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사도 요한은 왜 자신이 이 책을 기록했다고 이야기합니까? 이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일차적으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즉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 우리는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믿게 하려고 이 책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 즉 영생을 얻게 하려고 이 책을 기록한 것입니다.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처음에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외치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예수님의 뒤를 쫓아간 것이 예수님과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다른 제자들보다도 예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제자였습니다. 성경은 사도 요한을 가리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초기부터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목도했습니다. 그저 대중들 앞에 드러난 예수님의 말과 행동만을 보고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적인 장소와 시간 속에 예수님과 깊은 대화와 교제를 가지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갔습니다.요한복음은 그렇게 해서 사도 요한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예수님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사도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참된 증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요한복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고 기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됩니다.그 은혜를 받아 누린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저 자신입니다. 우리말로 쓰인 성경을 읽으며 그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과 생명을 얻었습니다. 성경이 제 손에 쥐어졌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나 손쉽게 우리말로 된 성경을 구해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주신 은혜이자 축복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국내성경반포를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헌신하고 수고하셨던 많은 선교사님들과 성경학자들, 그리고 대한성서공회의 땀과 열정이 담겨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아직 세계 곳곳에는 성경을 구해 읽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성경을 기증하는 아프리카의 세 나라인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는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나라들입니다. 어쩌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먹을 양식이 더 시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는 말씀처럼, 그들에게는 육체의 생명을 지탱케 해 주는 양식 이상으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성경'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우리교회에서 성경을 반포할 국가가 한 나라 한 나라 선정될 때마다 교회 홈페이지에 이와 관련된 글을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그 글을 쓰면서 이 가난한 나라들의 성도들이 성경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기뻐하고 있는 사진들을 접했는데, 참으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옷도 허름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듯한 모습이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기쁨과 만족이 성경책을 품에 안고 있는 그 성도의 얼굴에서 흘러나왔습니다.이번에 우리가 제작 반포하는 성경책이 흘러가는 곳곳마다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 성경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믿어 생명을 얻으며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가졌던 그 심정을 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경반포사역에 힘쓰는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9월 9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마다가스카르 말라가시어, 탄자니아 스와힐리어, 말라위 치체와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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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헤못

베헤못(Behemoth)ㅡ 하마 관련 구절 브헤모트(behemoth) 욥기 40:15  이름에 대한 논의 성경의 다른 문맥에서 히브리어 ‘브헤마’(behema)는 일반적으로 큰 동물, 특별히 가축을 가리킨다. 그러나 욥기 40:15가 묘사하는 이 동물은 특별한 종류의 동물로 등장하고 있다. 이 동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신화적 괴물이다. 후대 랍비 문헌들은 이 동물을 다른 괴물인 리워야단과 격렬한 싸움을 한 괴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창세기 1:21에 언급된 ‘큰 바다 짐승’과 연관이 있다. 2) 하마이다. 이 제안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많은 영어 역본들은 각주에 이렇게 표시하고 있다. 하마는 이집트에 잘 알려져 있는 동물임에 틀림없으며 아마도 메소포타미아의 일부 지역에서도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욥기 40:15-20의 문맥과 하마는 많은 점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우선 욥기 40:16에서 묘사하는 베헤못의 힘과 강한 근육은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하게 풀을 뜯어먹거나 물에서 쉬기만 하는 하마와 연관 짓기가 어렵다. (하마의 턱은 대단히 강하고 특히 수컷 하마는 위험한 동물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해볼 때 하마의 근육과 힘이 매우 감탄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둘째로 하마의 작고 뭉툭한 꼬리는 들어올리기 어렵고, 자신이 싼 대변을 흩어뜨리는 데만 사용된다. 이 점은 욥기 40:17에서, 꼬리 치는 것이 백향목(또는 레바논개잎갈나무) 모습 같다는 언급과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욥기 40:20에 나타난 베헤못은 산의 풀을 먹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하마는 보통 강변에서 서식하며 또는 범람원 주변이나 강물이 흐르는 골짜기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언덕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하마는 극도로 짧은 다리와 무거운 체중 때문에 바위를 넘어가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는 힘들다.  아프리카코끼리 3) 남부 이집트의 나일 계곡, 수단, 에티오피아에 살았던 아프리카코끼리와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살았던 인도코끼리는 구약시대에도 알려져 있었다. 베헤못에 관한 설명은 하마보다는 코끼리에 더 잘 어울린다. 이 동물의 강력한 힘이 가장 뚜렷한 증거이다. 달릴 때 코끼리는 자신의 꼬리를 곧게 세운다. ‘꼬리’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코끼리 코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욥기 40:21에서 ‘가시나무 아래에나 습지의 갈대밭 그늘에 누우니’라는 묘사는 진흙구덩이나 강에서 진흙 목욕을 하거나 뒹군다고 잘 알려진 코끼리의 습관을 가리킬 수 있다.    번역가장 좋은 번역은 본문에 ‘괴물 베헤못’으로 적은 뒤, ‘이것은 아마도 코끼리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각주를 덧붙이는 것이다.    출처: Edward R. Hope, 『성서 속의 동물들』, 이영미 외 역 (서울: 대한성서공회, 2018), 251-253; All Creatures Great and Small: Living Things in the Bible (UB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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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비둘기, 집비둘기(dove, pigeon)

들비둘기, 집비둘기(dove, pigeon) ㅡ<관련 구절>요나(yonah)창 8장; 시 55:6; 아 1:15; 사 38:14 토르(tor)레 1:14; 민 6:10 페리스테라(peristera)마 3:16; 막 11:15 트루곤(trugōn)눅 2:24이름에 대한 논의일반적으로 ‘집비둘기’는 사육하는 새를, ‘들비둘기’는 야생종을 가리킵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서식하는 아시아양비둘기는 집에서 기르는 전서구의 조상으로, 히브리어 ‘요나’와 그리스어 ‘페리스테라’가 이 비둘기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어 ‘토르’는 철새인 멧비둘기를, 그리스어 ‘트루곤’은 텃새인 염주비둘기를 가리킵니다. 창 15:9에서 히브리어 ‘고잘’(gozal)은 집비둘기 새끼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집비둘기와 들비둘기를 새장이나 비둘기장에서 길렀으며, 야생 비둘기는 그물망을 치고 길렀기 때문에 제사 때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비둘기’는 사육하는 새를, ‘들비둘기’는 야생종을 가리킵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서식하는 아시아양비둘기는 집에서 기르는 전서구의 조상으로, 히브리어 ‘요나’와 그리스어 ‘페리스테라’가 이 비둘기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어 ‘토르’는 철새인 멧비둘기를, 그리스어 ‘트루곤’은 텃새인 염주비둘기를 가리킵니다. 창 15:9에서 히브리어 ‘고잘’(gozal)은 집비둘기 새끼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집비둘기와 들비둘기를 새장이나 비둘기장에서 길렀으며, 야생 비둘기는 그물망을 치고 길렀기 때문에 제사 때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모양양비둘기는 푸른빛 회색으로 목 부분에 분홍빛이 있습니다. 꼬리 끝은 검은 색입니다. 슬퍼하며 신음하듯이 ‘움’ 소리를 반복하거나 급하게 두세 번 구구구 소리를 내며 웁니다. 멧비둘기는 푸른빛 회색으로 분홍빛 가슴에 몸집은 비교적 작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4월부터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의미 또는 상징들비둘기와 집비둘기는 유대인에게 제의적으로 정결한 새입니다. 빨리 날기 때문에 시편에서는 빠름의 상징입니다. 연중 언제나 짝짓기를 하므로, 고대 이집트, 가나안, 히브리 문화권에서는 애정, 성, 번식력을 상징하였는데, 아가서에서는 이 상징이 중요합니다. 들비둘기는 담즙이 없어서 화를 내지 않는다는 고대인의 믿음 때문에 평화와 온유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집비둘기와 들비둘기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이름 ‘요나’는 아픔과 슬픔으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은 예언서의 운문에 자주 나타납니다.  번역일반적으로 몸집이 좀 더 작은 야생 비둘기를 뜻하는 단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사와 관련하여 집비둘기와 들비둘기를 함께 언급하는 맥락에서는 집비둘기에 해당하는 단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왕하 6:25에는 문자 그대로 “들비둘기 똥”이란 히브리어가 나온다. 이 의미를 ‘병아리콩’, “구주콩”, “부추”, ‘야생초 뿌리’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불확실합니다. 문자 그대로 ‘들비둘기 똥’으로 번역하고, ‘재난이 닥쳤을 때 먹는 야생 그대로의 음식인 것 같다’는 설명을 각주로 덧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Edward R. Hope, 『성서 속의 동물들』, 채은하 외 역 (서울: 대한성서공회, 2018), 146-149; All Creatures Great and Small: Living Things in the Bible (UB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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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 성경] <새한글성경> 국어학적 특성을 중심으로

 민현식(대한성서공회 <새한글성경> 국어 책임감수자) 대한성서공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 2012년 12월부터 번역 사역을 시작한 <새한글성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성경 원문을 살려 번역해 온 한글 번역 성경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급변하고 있는 현대 한국어와 다음 세대의 한국어 사용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새롭게 번역한 한글 성경입니다. 이에 <새한글성경>이 기존 성경과 달라진 국어학적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1) <새한글성경>은 다음 세대를 위해 완전히 새롭게 번역한 21세기형 성경입니다.기존 성경의 굳어진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원문의 뜻과 성경 장르의 특성을 살리면서 쉽고 새로운 현대 한국어 표현을 찾아 전면적으로 새롭게 번역하였습니다. 옛 말투 종결 어미 ‘-도다, -(니/더)라체’ 대신 현대 말투 ‘-(는/았)다체’로 통일하였고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복음서, 서신서라는 성경의 장르 특성을 살려 번역하였습니다. 다음은 시가서의 특성을 갖는 시편 1장 1-3절입니다.<성경전서 개역개정판>(1998) 시편은 ‘-도다, -로다’라는 옛 말투 만연체로 되어 있으나 <새한글성경> 시편은 시가서라는 장르 특성을 살려 간결한 운문체로 번역하고 시행(詩行)을 살려 편집하였습니다.또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1998),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1999), <성경전서 새번역>(2001)번역 성경에서 보듯 130여 년 동안 굳어져 화석화된 기존 성경 표현들과 달리 <새한글성경>은 쉽고 다양한 한국어 표현들로 번역하여 한국어의 세계를 널리 확장하였습니다.시편 1장의 어휘 표현의 변화(2) <새한글성경>은 더 쉬운 고유어와 한자어로 번역하고 다음 세대가 성경을 더 쉽게 잘 이해하도록 하였습니다.가령 ‘유월절’을 ‘넘는명절(유월절)’로, ‘석청’을 ‘들벌꿀’로, ‘신들메’를 청소년에게 익숙한 외래어 ‘샌들끈’으로, ‘번제물’, ‘소제물’은 ‘다태우는제물(번제물)’, ‘곡식제물(소제물)’처럼 쉽게 풀어쓴 어구로 고치고 괄호 안에 전통 번역어를 넣기도 하였습니다.(3) <새한글성경>은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이야기(스토리텔링)를 현대인의 간결한 언어생활에 맞추어 문장의 길이를 짧게 하였습니다.기존 성경은 줄글 만연체로 획일화하였으나 현대인은 쉽고 짧고 빠르게 쓰는 통신언어에 익숙하므로 문장 길이를 1문장 최대 16어절 50자 이내로 간결화하였습니다. 이는 앞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4) <새한글성경>은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대화문을 한국어의 높임법을 살려 번역하였습니다.<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높임법을 ‘하십시오체’와 ‘하라체’ 두 가지만으로 획일화하여 한국어의 높임법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으나, <새한글성경>은 인물 간의 다양한 관계에 따라 비격식체(회화체)인 ‘해요체’, ‘해체(반말)’를 비롯해 격식체인 ‘하십시오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 등 다양한 높임법을 살려 번역하였고 대화나 인용 성구를 따옴표로 구별해 가독성을 높였습니다.특히 예수님과 제자 간의 대화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에서는 ‘하라체’로만 하고, <성경전서 새번역>에서는 ‘해라체’로만 하여 권위적이었으나, <새한글성경>에서는 예수님도 제자들을 존중하여 높이는 ‘하십시오체’나 ‘해요체’를 사용하였습니다.(5) <새한글성경>은 차별적 언어 표현을 개선하였습니다.최근 인종, 성별, 장애, 질병 등에 대해 차별 표현을 순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도 과거의 차별 표현을 순화한 중립적 표현으로 바꿨습니다.(6) <새한글성경>은 한국어 어문 규정을 준수하고 인용 부호 등 문장부호를 전면 도입해 가독성을 높였으며 도량형 단위도 가급적 현대 용어로 바꿨습니다.외래어 표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기존 관습 표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지명은 현대 외래어 표기법(1986)과 표준국어대사전(1999)의 용례 표기를 따랐습니다.시간, 도량형 단위나 수량 단위 표시를 현대인에게 익숙한 알파벳 도량형 단위로 하고, 수효는 가급적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해 시각적 인지 효과를 높였습니다.요컨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된 <새한글성경>은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까지 한국어의 표준을 보여 주는 성경이 되어 한국어로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우는 성경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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