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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말씀 (창세기 12:1~4) - 김동익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세기 12:1~4)미국의 정신 분석가이며 사상가로서 작년에 작고한 「에리히 프롬」(Erich From)은 인간을 가리켜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고 했습니다. “희망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동물은 과거의 경험과 관습에 의해서 살아가지만 인간은 내일을 꿈꾸며 무엇인가 이루어 보려는 성취욕구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성공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성공이냐 할 때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집니다.성공은 붙잡히는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느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인간은 두 가지의 느낌 중에서 성공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는 소유의 욕구가 충족될 때 성공의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한편 소유는 못할지라도 창조의 욕구가 충족될 때 느껴지는 성공의식이 있습니다. 자신의 헌신과 노력을 통해 새로운 것이 발견되거나 발명될 때 또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질 때 느껴지는 성공의식입니다.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소유적인 인간으로 만드시지 않으시고, 창조적인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활용하여 창조적인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는 데 급급했습니다. 창조보다는 소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한 나머지 삶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숱한 죄악과 더불어 불안과 염려, 시기와 다툼, 수고와 고통의 어둠속에 살게 되었습니다.그러면 어떻게 인간은 소유적인 삶에서 창조적인 삶으로 전환하여 보다 밝은 내일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 전환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이 전환을 가리켜 혁명적 전환 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렀습니다.창세기 12장에 보면 소유적인 삶에서 창조적인 삶으로 극적인 전환점을 가진 한 인간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메소보다미아 북부 갈대아 우르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유브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 있는 곳이어서 고대 중동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부유한 족장이었습니다. 갈대아에서의 아브라함의 삶은 소유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땅을 더 사고, 재산을 모으고, 아내를 얻고, 가정을 이루는 등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만족한 생활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들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아브라함은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첫째, 말씀은 인간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고, 새로운 삶을 갖도록 합니다. 창세기 12장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는 말씀이 들려 왔을 때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으로 하여금 현재의 안일한 자기중심의 삶에서 일어나 내일을 향해 삶의 목적을 갖추도록 합니다. 즉 “어떻게 사느냐”에서 “무엇을 위해 사느냐”의 삶의 자세를 갖도록 합니다.둘째, 말씀은 인간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2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복의 소유자에서 한걸음 나아가 “복의 근원” 곧 복의 기여자가 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자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막 10:45). 남을 위해 자신을 줄 수 있는 삶을 갖추도록 하는 힘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순복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길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셋째, 말씀은 인생으로 하여금 절망 속에 좌절하지 않게 하고 희망 속에 믿음을 키워나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지방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 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는 65세였습니다. 슬하에는 자식 하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황혼기에 도달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면에 희망을 포기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을 때 인생의 새 봄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새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는 시편의 노래처럼 아무리 캄캄한 인생행로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길을 밝게 비춰 줍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출처: <성서한국> 1982년 6월 30일 28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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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손에는 성서를 (시편 119:9~16) - 이승하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 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119:9~16)블란서의 젊은이가 군에 입대할 때는 두 권의 책을 갖고 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서요, 다른 것은 파스칼의 ‘팡세’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입니다. 거기에 인간을 위한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하이네는 병으로 죽기 직전에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성서였다’고 남겼습니다. 성서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살펴서 성서를 대하면 그 후의 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젊은이는 이룩되어져 가는 인격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엇으로 그 고귀한 인간을 완성할 것입니까? 헬라어로 젊은이라는 말은 ‘새롭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고로 지금까지 있던 것을 추구하지 말고 새롭고 창조적인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성서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성서는 무궁한 창조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었을 때 매우 교만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를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성서를 갖고 가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후 그는 성격적으로 겸손하고 유순한 사람이 되었을 뿐 아니라 훌륭한 문학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서가 그에게 없었다면 그의 불후의 작품도 없었을 것입니다.인간의 유명한 서적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서는 만고불후의 영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시절만 아니라 평생을 두고 간직해야 할 말씀입니다 특별히 고난의 때에 그 말씀은 깊은 감명과 위로를 줍니다.중국의 장제스는 어려운 감옥생활에서 성서를 읽고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말씀의 명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순간이라도 버리지 말고 성서를 명상한다는 것은 가장 귀중한 시간입니다. 리빙스턴을 이어 아프리카 탐험을 한 미국의 탐험가 스탠리는 아프리카 탐험을 시작할 때 73권의 책을 갖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대지방의 내려 쪼이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도저히 그 책들을 갖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한 권씩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일 마지막까지 보관하고 있던 책은 바로 성서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손에 있던 성서는 그의 생명과도 같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젊은이는 그의 행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성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편 기자는 역설했습니다. 그 말씀이 젊은이의 행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작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배워야 합니다. 세 번째로 그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새로운 신앙적 인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바른 기독교의 신앙은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이룩됩니다. 성서는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항상 손에 들려져 있어야 할 무기입니다. 이 세대를 따라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오직 이 말씀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기본적인 자세를 갖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제국이었던 로마를 복음화하는 데 가장 큰 고난의 길을 오직 말씀으로 끝까지 이기고 나갔습니다.학생의 손에 전문서적이 들려지기 전에, 기술자의 손에 도구가 들려지기 전에, 운동선수의 손에 그 운동구가 잡히기 전에, 군인의 손에 무기가 들려지기 전에, 구제하는 사람의 손에 구제품이 들려지기 전에 먼저 성서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행위이며 그것이 그 인생의 모든 행위를 주관할 것입니다.나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성서가 되어야 합니다.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시인 윌리암 콜린즈는 만년에 신약성서 한 권만 항상 손에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왜? 그것이 가장 훌륭한 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항상 지니고 있는 것은 가장 귀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며 사람에게 가장 감명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며, 오늘도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이 시대는 핵무기의 감축을 위하여 동서양의 정치가 초긴장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더 훌륭한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는 한 어떤 전쟁도 도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미래를 창조해 가야할 미래의 주인공들이여, 무엇을 원합니까? 그 이상을 손에 들려진 성서로 성취하기 바랍니다.(출처: <성서한국> 1985년 여름 제31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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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 8:1~3) - 임영수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1~3)  몇 년 전 스위스 취리히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저녁 무렵 호숫가에 나가보면 잘 조화된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연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몹시 더럽고 지저분한 모습의 젊은 남녀 마약중독자들이 몰려들어 천태만상을 이룹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는 안정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부유층에서 그런 유의 청소년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살아있지만 죽었다’고 하는 성서에서의 표현이 바로 이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들에게 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교회가 주어야 된다고 하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교회에 나가보면 건물은 웅장하나 앞자리에 노인 몇 사람뿐이며, 논리적으로 철학적인 설교가 선포됩니다만 그들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위스에는 성경이 없는 집이 없으며 중고등학교에서는 성경이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성경을 반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농부가 하나의 쌀을 생산해내면 쌀이 필요한 사람이 사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부가 식구들 구미에 맞게 밥을 지어야 식구들이 먹고 건강한 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성서공회에서 각국 나라의 말로 성서를 찍어내는 일 자체가 영의 양식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일선의 목사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영적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잘 요리해서 공급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공회가 하는 일과 교회 목사들이 하는 일은 균형이 잘 맞아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찍어내도 이것이 잘 배포되지 않으면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려 해도 북한에서처럼 잘 접할 수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일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여기에 또한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여야 성서공회와 목사가 하는 일이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기갈 가운데 있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책보다 쉽게 구입할 수 있고 거리상으로나 시간상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교회가 좀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역사 속에서 바르게 선포하고 알려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서공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산하고 또 전 세계에 수출하는 데 힘쓰며, 우리 일선의 목사들은 성령의 도움 안에서 열심히 이것을 풀어서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말씀으로 선포되어질 때 오늘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단 사람의 귀에 바르게만 들려지면 하나의 구체적인 역사의 사건을 만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입니다.  우리의 말은 아무런 능력도 실효성도 없지만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입으로부터 나오고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바르게만 받아들여지면 상당히 놀라운 창조의 역사적 사건이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목회를 현장에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찍어내고 선포하면서, 이 말씀이 오늘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데 우리의 소망과 기대를 걸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큰 의미와 보람을 찾아야 하겠습니다.(출처 : <성서한국> 1988년 6월 34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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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역사” (히브리서 4:12) - 최종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브리서 4:12)  창세 이후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많은 사건들 가운데 말씀의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충격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 교회를 갱신케 하여 사역하게 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로 현현하신 그리스도가 그 신앙을 바로 고백하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의 사령부가 되도록 섭리하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감격스럽게 새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계시된 메시야입니다. 그 메시야를 고백하는 믿음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을 가지고 창조의 뜻하신 어둠과 빛, 진선미 그리고 선이 끊임없이 새롭게 창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교회는 운동하는 힘을 가지고 역사하게 된 것인 줄 압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부여된 많은 과제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굴절현상을 창출해가고 있는 아픔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통일을 제안하고 심지어는 우리 교회에서까지 통일에 대한 제안이 극렬해져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져 가는 바벨탑은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는 방언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엄숙히 교훈해주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수없는 역사의 심판을 거듭해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는 이 많은 문제들은 어디에서 풀어 해결을 볼 수 있을까요? 이 하나님의 말씀, 참으로 그리스도의 계시적인 목적으로 역사하는 이 교회가 그 말씀의 운동력을 가지고 여기 히브리서가 말씀한 것처럼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역사하게 할 때 가능한 그러한 희망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줄 압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많은 지역적인 문제를 고함쳐 외치지 아니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할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살아있는 이 말씀, 혼돈된 땅 위에서 진선미를 창출해내는 창조의 생명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이 인간 역사를 구출하시기 위해서 친히 그 말씀이 인격을 이루시고 현현하셔서 그 메시야를 고백하는 신앙 위에 그 교회로 하여금 끊임없는 역사의 갱신을 이룩하게 하시며, 이 교회가 살아 있는 말씀의 선포와 이 말씀의 경첩, 이 말씀 앞에 진심으로 고백하는 그러한 신앙의 역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굳이 18세기 웨슬레의 말씀의 운동이라든지 성령의 운동, 칼빈의 종교개혁, 루터의 종교개혁 등과 같은 예를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너무도 목마르도록 요청되는 오늘의 명제인 것입니다.  참으로 귀중한 보화인 이 말씀들이 비록 질그릇에 담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 질그릇 속에 담겨있는 이 보화의 새로운 빛이 이 어둠 속에, 이 혼돈 속에 비춰져서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진리의 길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이 말씀의 의미를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전개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성서공회가 말씀의 선포에 박차를 가하는 이 사역은 실로 하나님 앞에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더 가져다주는 사역이라고 믿습니다.  영광이 여기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출처: <성서한국> 1989년 6월 35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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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게 하소서 (요한복음 17:11) - 정진경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11)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지상 생활을 거의 마치려는 무렵에 드린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또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마치기 전에 유언과도 같은 위의 두 가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는 하나가 되라는 일치에 관한 말씀이고, 또 하나는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선교에 관한 말씀입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한 세기 동안에 두 번째 위임사항인 증인의 책임은 비교적 성실히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분부이신 하나되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크고 아픈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열이요, 분파주의입니다. 온 세계가 지금 운명을 같이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역사적인 전환기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의지는 만민의 공통된 이념이요, 세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는 먼저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하나될 때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세계의 질서도, 인류의 평화도, 교회의 일치와 연합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되는 길을 제시하면서 “너희는 먼저 주 안에서 마음을 같이 하고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것들이 ‘하나의 뜻’을 위해 조화를 이루고 협력을 할 때 놀라운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많은 연합기관을 조직하고, 규약을 만들고, 인물을 배치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활동만으로는 연합운동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마음과 사랑과 뜻의 내적 일치가 없이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연합운동은 먼저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가 되는 길을 가르치면서 ‘다툼이나 허영’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다투면 경쟁심이 생기고, 경쟁심이 커지면 승부욕이 조장되어 자기집착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자기의 주관적인 고정관념이 굳어지면 자신을 비울 수가 없고, 자기를 비우지 못하면 상대방을 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 때는 연합정신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를 포용할 수 있었고 반역하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출처: <성서한국>1994년 9월 40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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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의 성경 암송 (요한복음 3:16) - 지원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그러니까 내가 세 살 때였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어려서 교회에 나가 제일 먼저 외게 된 구절이 바로 이 말씀이다.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랗고, 코가 우뚝 솟은 이상하게 생긴 서양 여자가 서투른 발음으로 이 말씀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본 것이 아마도 내 교회생활에서의 가장 첫 번째 기억 같다.내가 태어난 곳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시골마을이다. 거기서 교회까지는 십 리 거리이며, 산골길과 논, 밭둑길을 지나는 험한 오솔길이었다. 부모님 등에 업혀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나는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외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로교회의 젊은 여선교사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 교회에 와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것이다. 이상한 발음으로 반복하여 따라 읽도록 하는 그 말씀이 매우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그 말씀이 재미있다기보다 그 말씀을 가르치는 서양 선교사님의 모습과 발음이 재미있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거다. 크리스마스 때나 추수감사절 축하행사 때에는 반드시 주일학생들의 찬양이나 재미있는 프로그램 등이 교인들을 기쁘게 했었다. 나는 이런 행사 때마다 나가서 성경 암송하는 순서를 맡곤 했다. 때로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외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왼 것이 이 성경말씀이라고 기억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교인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마을 사람들도 많이 나와 교회당 밖에까지 사람이 차고 넘쳤었다.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고, 내려오면 저마다 잘했다고 칭찬들이었다.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 말씀이며 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구속의 진리를 한마디로 요약한 복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 그 말씀은 더욱더 감동과 은혜가 되는 말씀이 되었다.(출처: <성서한국> 1994년 겨울 40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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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반포와 새로운 영적 부흥 - 김선도

대한성서공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성경은 전 세계 2,092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숫자는 복음과 성경만이 세계를 하나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헌신한 미국의 한 선교학자는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은 바로 성경연구와 말씀을 사모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의 기초에는 성경에 대한 사랑과 성경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에 대한 긍정적 수용성은 한국선교 초기 권서들의 헌신적 역할과 성서공회의 희생적 봉사에 크게 힘입어 맺어진 열매인 것입니다. 이후로도 말씀을 귀중하게 여기는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말씀으로 무장하는 강력한 한국교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백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제가 북한 땅 신의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공산당의 박해가 얼마나 심한지 예배당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몰래 숨어서 예배당에 갔습니다. 성경도 오래된 낡은 가죽 성경 한 권을 고이 간직하면서 그걸 숨겨가지고 다니며 교회에 나가곤 하였습니다. 오버 코트 속에 성경을 숨겨 가지고 다니며 주일 저녁에도, 수요일에도 예배를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코트에 성경을 넣어둔 것을 잊고 공산당에 가입한 친구에게 옷을 빌려주는 바람에 성경이 발견되었고, 그 결과로 장학금이 중단되는 등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만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그 성경으로 인해 제 장래는 실패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오히려 성경 때문에 힘을 얻었고 성경이 저를 승리하게 한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57억 세상 사람 각자에게 성경을 한 권씩 전해주려는 비전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있는 그리고 동참해야 할 귀한 사명입니다. 이것이 성서공회의 귀한 사역의 근거와 목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한성서공회의 지난 1994년의 활동만 보더라도 국내에서는 156만 부나 되는 단편성서가 반포되었고, 국외로는 전 세계 99개 나라에 120개 언어로 된 각종 성경과 신약 등 500만 부를 국내에서 출판 ․ 제작하여 해외에 보내는 놀라운 실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대한성서공회의 활동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손에 쓰여지는 도구로써의 값진 헌신에 모든 교회들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전개하는 성서사업 운동에 대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성경번역 사업에 모든 교단이 하나가 되도록 힘쓰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분파현상까지 복음과 통일을 위해 극복하려는 현 시점에서 성경반포 사업이 역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반포 사업에 이기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고 선교에 장애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기에 모든 교회가 함께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효과적인 전달을 훼방하려는 사탄의 궤계가 교계에 침투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는 성서주일을 통하여 말씀의 중요성과 함께 성경반포가 선교에 미치는 강력한 효과를 교우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성서주일이 전 교회가 성경반포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전략으로 이어지는 데는 미흡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서주일은 단순한 모금의 차원이 아니라 말씀과 성경을 널리 전해야 할 교인들의 사명을 자각하게 되는 기회가 돼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성경반포 선교사’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셋째는 기독교의 위기는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살아 있지 못할 때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삶 속에서 적용되고 개인의 심령을 넘어서 가정과 사회와 나라 전체에 강력히 역사하는 살아 있는 말씀(Living Word)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반포에 관계되는 모든 봉사자들은 전달의 차원을 넘어서서 말씀의 능력을 믿고 불신자들의 심령에 잘 박힌 못과 같이 생명의 말씀을 심어나가는 노력이 교회와 함께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는 언제나 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열정과,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성서공회의 근본목표가 모든 직원들에게 투철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적 ․ 물적 에너지가 복음을 위해 쓰여지기 위해서는 사명 없이는 못합니다. 모든 기관이 변화해가는 이 시대에 말씀을 바로 전달하기 위해서 지혜를 짜내고 변화의 아픔을 감당해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위해 일할 최상의 여건을 주셨음을 깨닫고 온 세계를 향해서 우리의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성서공회에 신앙의 자긍심을 주시고 우뚝 세워주신 것은 더욱더 세계를 향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거짓과 사이비가 범람하는 이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이 파고 들어갈 수 있도록 더욱 귀한 일을 성취해 나가시며 새로운 창립 2세기를 맞이하는 성서공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출처: <성서한국> 1995년 여름 41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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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맺어준 부부 - 김순권

성경과 연관된 재미있는 얘길 나는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다. 일본에서라는 말도 있고 중국 땅에서 생긴 거라고 하기도 하고 역시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있었던 실화란 말도 있다. 하도 오래된 얘긴지라 어디서 생겨서 내 귀에 머물게 된 건지 그 시기도 또렷하진 않다. 따지기에 앞서 그 내용이 드라마틱하니까 이 얘길 부흥회를 나가서 아침 성경공부 시간이나 밤 집회에서라도 지루할 듯싶으면 꼭 예화로 들곤 한다.얘기의 시작은 이렇게 뚜껑을 연다. 어느 곳에 여자성경고등학교가 있었다. 그곳 기숙사에서는 10대 후반의 여학생들이 모여서 생활을 함께 했는데 하루일과는 꽉 짜여진 공동체 활동이었다.하루의 시작은 채플에서 새벽기도회를 갖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불이 켜지고 꺼지는 걸 눈독 들여 보고 있는 어떤 이가 있었다. 도선생, 즉 도둑이었다. 며칠을 두고 망을 보고 디데이를 정했다. 텅 빈 기숙사를 털기 위해 그날 새벽 혼자서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가정집을 대상으로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훔칠 게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탐나는 물건도 없었다. 여학생들인지라 옷가지 얼마를 주섬주섬 모아 돌아왔다. 혹시 주머니 속에 헌금이라도 있을까 기대하고 가져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맨 먼저 손이 간 곳은 주머니였다. 돈이라곤 동전닢 몇몇 부스러기뿐이고 빈주머니였다. 허탕을 친 거라 생각하고 다시 다른 옷을 들었는데 짧은 여학생 코트에 손이 닿는 순간 돈뭉치가 잡히는 듯싶었다. 주머니를 찾아 손이 들어가자마자 손바닥만한 게 잡혔다. 꺼냈다. 돈뭉치가 아닌 책이었다. 빨갛게 가죽으로 표지화된  포켓성경이었다. 도선생은 그 책을 휙 던졌다. 그날은 허탕이라 생각하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천장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곤 담배 한 대를 피우려고 윗목에 두곤 했던 담뱃갑을 잡는다는 게 조금 전 팽개친 그 포켓성경이 또다시 손에 잡혔다. 누운 채로 무심코 책을 폈다. 펴자마자 눈에 들어온 활자는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였다. 성경 중에서도 로마서 13장 9절이 똑똑하게 그의 눈에 보여진 것이다. 다시 재수없다는 식으로 책을 휙 던지고 말았다. 방바닥 구석으로 팽개친 것이다.그 후 그는 도둑질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도적질하지 말라’라는 생생한 소리가 머리에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몇 차례 남의 집에 침범하려고 들어가려는 순간에도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그의 발걸음은 결국 뒤로 돌아서곤 했다. 그는 기분이 나빴다. 재수없는 그놈의 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난 후에는 도둑질을 안 해도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도둑질, 남의 물건훔친 놈, 누군가 자신을 나무라는 듯 괴로웠다.그는 결국 그 포켓성경을 다시 찾아 이까짓 책이 뭐길래 나를 괴롭히나 싶어서 처음 읽은 그곳을 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찾질 못했다. 그 구절을 찾으려고 뒤적뒤적거리다 보는 듯 마는 듯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좋은 말씀이 담긴 성경임을 깨달았고 수년 후에는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그는 회개를 하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새 삶은 기쁨이요 감사였다. 그는 항상 포켓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무슨 일을 할 때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성경을 만지면서 길도 걷고 일도 했다. 습관처럼 성경은 언제나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틈만나면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도 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성경학교에 입학하여 시골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나이도 30이 훨씬 넘어서였다. 이제는 결혼도 해야 할 때, 노총각 전도사로선 교회 아낙네들 대하기가 어려워 아들처럼 사랑해 주신 목사님의 소개로 결혼을 했다. 처음 포켓성경을 접촉한 때로부터 13년이 흐른 후였다. 노총각 노처녀의 만남은 깨가 쏟아졌다. 그런데 하루는 부인이 남편 전도사님의 옷을 정리하다가 주머니 속에서 오래된 성경을 보고 갸우뚱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러나 기억은 나질 않았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 성경을 어디서 구했으며 언제부터 주머니에 넣고 다녔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남편 전도사는 얼굴이 잠시 상기되더니 이 성경책으로 연유된 지금까지의 사연을 간증하듯 들려 주었다. 그때 말하던 남편보다 부인이 더 넋을 잃고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원래 주인은 바로 그 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인 역시 주일학교에 다닐 적부터 이 작은 성경책을 아끼고 좋아했다. 그래서 늘 이 책을 휴대하고 다녀 손때 묻은 책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성경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이 책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신약만의 책이지만 여간 정이 든 게 아니라서 다른 어느 성경책보다도 더 마음이 끌리곤 했었다.이 책을 잃어버린 후 돈 보따리나 보물을 잃은 것처럼 울었다. 같이 잃은 코트는 별로 생각이 안 났다. 그러나 그 책이 없어지고는 주머니에 손이 들어갈 때면 무언가 손에 잡혀 흐뭇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항상 허전해 했던 것이다. 성경을 잃은 후 1년 남짓 지난 후 그는 색다르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그 책이 불 속에 들어가 태워지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만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또 얼마 후에는 이 책이 누군가의 손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결국 그의 기도는 기도대로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 더 연극처럼 현실화된, 그 책으로 인연이 되어 부부로 맺어진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성경을 통해 재미있게 인생살이를 엮어낸 것이 어찌 여기에 나오는 이 두 사람뿐이랴. 너무도 아름답고 두고두고 교훈이 될 얘기는 참 많다.(출처: <성서한국> 1995년 가을 41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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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당신을 유익하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3:15~17) - 김규병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5~17)성서는 하나님께서 가르치고 성령이 생각나게 하신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며 세상에서 제일 많이 읽혀지는 책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유일한 길은 우리 스스로가 성서를 연구하고자 하는 의욕을 갖는 일입니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공, 실패 여부가 어디에 있습니까?그것은 첫째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마음에 되새기느냐에 달려 있고 둘째로는 그 성경 말씀대로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만일 우리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 노력을 더하면 더할수록 그만큼 우리는 더 빨리 그리고 더 성공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고 말씀하심으로 성공의 비결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함에 따라오는 결과입니다.그러므로 성서란 바로 나와 내 가정, 내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서가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유익이 무엇입니까?1. 성서는 우리를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요일 2:14)“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2:14)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데에서만 올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강하게 자라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 죄와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서는 우리를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줍니다.2. 성서는 구원을 보증해 줍니다.(딤후 3:15)성서는 죄인을 구원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고 말했습니다.3. 성서는 기도할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줍니다.(요 15:7)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결과로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체험하게 됩니다.4. 성서는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요 15:11)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는 그대로 하나님의 약속과 진리를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워 기쁨과 평안이 넘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성서는 약속대로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5. 성서는 삶의 결단을 내리는 데에 안내자의 역할을 하여줍니다.(시 119:105)우리의 생활에는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허다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이 결단을 원활하게 내릴 수 있습니다.6. 성서는 우리의 성공을 보장해 줍니다.(수 1:8)날마다의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할 때 우리가 소원하는 성공이 옵니다. 여호수아는 분명히 그대로 체험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약속이 체험이 요망됩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그러므로 읽고 묵상하고 외우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가짐으로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 봅시다.어느 유명한 신경과 의사의 간증입니다. “나는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기상후의 30분입니다. 이 시간의 20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상고하는 데 사용합니다. 이 일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윤택하게 하여 줍니다.”(출처: <성서한국> 1983년 6월 30일 29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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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요한복음20:30~31) - 서병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20:30~31)글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사진과 같이 어떠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다가 전하여 주려는 사건기록이나 역사서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 기록이 읽는 사람으로 어떠한 느낌을 주고 생각하게 하며 결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그래서 사실을 왜곡하여 전달하려는 역사 왜곡사건으로 국가 간에 복잡한 시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이 아닌 글이란 아무렇게나 써 놓는 낙서도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낙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글은 반드시 그 글을 읽음으로 무엇을 느끼며 깨닫고 생각하며 어떠한 결단을 하고 행동하게 하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게 되는 것이다.성서의 내용을 우리는 크게 역사서, 예언서, 묵시, 시가, 복음서, 서간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신구약 66권을 통하여 흐르고 있는 내용이 한 사실을 밝히며 한 목적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는 말씀이 요한복음만 아니라 성서 전체를 기록한 목적이라고 하겠다. 이 목적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려는지 뜻과 역사를 밝히며, 이 사실을 밝혀 전함으로 인간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내용이 성서 전체를 통하여 흐르고 있음을 성서를 통독했다면 누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성서란 인간이 기록했지만 인간의 의사인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라고 말씀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인간이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게 된다.성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실과 이루어질 것을 기록한 것인데 말씀에는 창조의 역사와 함께 명령, 책망, 심판, 형벌과 칭찬, 포상, 또 권면과 위로, 치유, 용서 그리고 약속이 들어 있다. 그러한 내용의 말씀을 둘로 줄인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말씀이라고 하겠으며 이를 다시 한 마디로 줄인다면 구원인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것으로 시작하여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재림에 대한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이 성서 속에 담겨져 있는 말씀의 내용이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하나님의 절대 의를 말씀하시고 나타내심과 함께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말씀과 이 말씀의 실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인간에게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음이 임하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예표였으며 또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셔서 불행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영원하지 않도록 막으셨다는 것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느냐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더 잔인한 극형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이 절망적인 불행 속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최악의 불행이라고 하겠다.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의 제물이 되심으로 만민의 죄를 용서하시는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시어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죄의 은총과 구원을 받고 영생하게 하셨다. 이 구속의 은총이란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신 것이다.하나님의 사랑이란 자신을 희생하셔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아니하여 죽을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아니한 죄에다 사랑을 거역하는 죄를 첨가하는 것으로 가중처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멸망할 구제불능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가장 멀리 있는 이웃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야 하겠는데 이는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가지게 하고 읽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되며 공산권 사회에까지 성서를 보내는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출처: <성서한국> 1982년 12월 31일 28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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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서와 나 - 박치순

내가 제일 처음 성경을 갖게 된 것은 소년 시절 어느 크리스마스 날이었습니다. 가정은 믿지 않았고 살림은 넉넉지 못해서 성경책을 갖는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작해야 궤도 찬송가를 부르거나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격스런 찬송과 내 마음을 사로잡는 말씀 속에서 전에 없었던 마음의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닌 덕택으로 눈이 하얗게 쌓인 날 아침 곡이 없는 발간 뚜껑의 찬송과 함께 내 생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성경책이 최우수상이라는 이름으로 내손에 들려졌습니다. 나는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감격했습니다. 내가 주일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 책은 내 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와 함께 소학을 마쳤으나 상급학교에 갈 형편이 못되 농사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오래전부터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히 생각하시던 아버님께서 할 일이 많다면서 교회에 못 가게 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어길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각하여 아버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많은 매를 맞았고, 그것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그날 내 아버지는 그 빨간 뚜껑의 찬송과 그렇게도 귀한 성경책을 찢어 변소에 집어넣으신 일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온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픈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나는 그 길로 마음대로 예수믿고 또 전도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공부길을 떠나 평안북도 강계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기독교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첫 여름방학에 집을 찾을 수 없는 나는 산수좋은 장수산 깊이 들어가 기도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생을 변화시킨 놀라움을 체험하였습니다.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바람소리와 물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조용히 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간다고 볼이 붓도록 아버님에게 매 맞던 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주일을 범하지 않은 열심,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겠다는 각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죄와 상관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새삼스럽게 수세기 전 교회사의 한 세대를 누빈 어거스틴의 회심 광경이 생각났습니다. 방탕하면서도 고민하던 그가 어느 날 정원을 거니는데 옆집에서 한 어린이가 책을 읽으라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들어가 성경을 펴 읽는 동안 로마서 13장 13절 낮에 같이 단정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에 부딛쳐 새 삶을 발견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이 자꾸만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나도 성경을 펴 들었습니다. 그 때 나는 마태복음 5장 53절~48절을 읽게 되었습니다.나는 그 순간 그렇게 열심이고 잘 믿던 나도 죄인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추악한 죄인인 내 모습과 그 죄인을 대속하시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십자가, 그리고 나를 새롭게 해 주는 성령의 역사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손에 들고만 다니던 성경이 내 마음속에 기록된 성서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성서는 아버지의 손에 의해 찢겨졌으나 어느 여름날 숲속에서 하나님께서 영으로 내 마음에 적어주신 말씀의 역사는 그 누구도 찢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도 나는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계속해서 살아 역사하심을 감사하게 느낌이다.“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출처: <성서한국> 1970년 6월 30일 19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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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경, 어떻게 나눌 것인가? - 김명혁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 중의 하나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이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안내자이며 교사이며, 또한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안경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1. 성경을 전해 받은 조선 사람들이와 같이 가장 큰 선물을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전해준 사람들이 있다. 독일 할레 출신인 개신교 선교사 카알 귀츨라프가 1832년 마카오에서 암헤르스트경 호를 승선하여 중국의 산동 해안을 방문한 후 황해도 서해안을 거쳐 충청도 서해안에 도착했다.그는 그곳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그 곳 주민들에게 중국어 성경과 전도문서를 나누어주고 아울러 감자를 심어주고 간 일이 있었다. 귀츨라프의 조선 방문은 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어쨌든 이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의 씨가 소멸되리라고 나는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미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이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미약한 첫 방문사업도 축복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조선 땅에 광명의 아침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이 큰 선물을 우리들에게 전해 준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영국 웨일즈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인 로버트 토마스였다. 구즐라프의 조선 방문으로부터 33년이 지난 1885년 9월,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 지후로부터 목선을 타고 조선 서해안에 도착하여 그 곳에 두 달 반 동안 머물면서 중국어 성경책을 그 곳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때 조선 사람들은 ‘목 잘릴 위험을 무릅쓰고’ 성경책을 받았다고 한다. 토마스 선교사는 그 이듬 해인 1866년 또 다시 중국의 지후로부터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 호를 타고 9월 초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올라왔다. 조선 병사들의 포화를 입어 배는 불타고 선원들과 함께 토마스 선교사도 피살되었으나 토마스 선교사는 마지막까지 그가 가지고 온 성경책을 조선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893년, 사무엘 마페트 선교사는 학습교인 반을 조직할 때 토마스 선교사에게서 중국어 신약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된 한 사람을 발견했다고 한다.2. 성경에 기초를 두고 세워진 한국 교회한국교회는 그 초기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주력했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인 사경회로부터 한국교회는 탄생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불리는 부흥운동은 바로 이와 같은 사경회로부터 일어났다.“1907년 신년집회에 1,500여 명의 신자들이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여 성경공부와 기도의 모임을 갖는 동안 참석자들은 모두 소리내어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이때 그들은 진정한 오순절적 축복을 경험했다.” 1907년 부흥운동에 광신적 요소가 없었고 진정한 교회의 성장과 삶의 변화를 가져왔던 중요한 이유는 그 부흥운동이 성경에 기초를 둔 부흥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 이후에도 성경에 기초를 두고 기도로 뜨거워진 교회로 성장해 왔다. 길선주 목사는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고 묵시록을 암송하는 것으로써 하루의 생활을 시작했다.” 주기철 목사의 목회 사역도 “기도와 성경 읽기에 주력한” 사역이었다. “주목사는 성경을 읽으며 비상한 고심과 정성으로 설교 원고를 작성했다. 그리고 산에 가서 철야기도를 하고 이슬에 젖은 몸으로 새벽에 집으로 돌아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3. 성경을 나누어주는 한국교회한국교회는 이제 전해받은 성경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지금 지구상에는 정치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성경을 소유하기가 힘든 곳이 많이 있다. 북한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그리고 수많은 모슬렘 나라들이 그러한 나라들이다.필자가 부이사장으로 있는 ‘소련선교회’(이사장 박원섭)는 그 동안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인들이나 현지의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어 성경을 많이 전해주었다. 88올림픽 때는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인들에게 2,660여 부의 성경책을 전해주었고, 89년에는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인들에게 36,000여 부의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으며 90년에는 세계침례교 대회에 참석한 구소련 침례교단 대표들에게 100,000여 부의 성경책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성경책 및 전도책자 보급을 통한 현지 선교를 계속해 오고 있다.타쉬켄트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수복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초, 러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대한성서공회에서 이 지역 선교사 협의를 통해서 공급한 성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러시아어/한글신약 대조 성경 350부를 기증받았으며, 인편을 통해 한글성경(성경전서) 100여 부를 기증받아서 선교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한성서공회에서 1992년 이후 계속해서 러시아어 성경과 한글 신약전서를 이곳의 각 교회별로 기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4년부터는 대한성서공회에서 러시아성서공회의 성서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1993년 이곳에 러시아성서공회 타쉬켄트 지부가 개설되어, 러시아어 성경을 필요한 대로 구입하여 보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앞으로 우즈벡어 성경 구입 및 보급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입니다.”또 모스크바에서 사역하고 있는 허충강 선교사는 “모스크바에 소재하고 있는 러시아 성서공회는 자체 인쇄소가 없어서 일반 인쇄소 두 곳에 의뢰하여 성경을 인쇄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 20종류의 성경전서, 신약전서, 단편성서 등을 인쇄하고 있습니다. 이 공회는 1991년부터 성서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자체적으로 성경을 인쇄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1월부터였습니다. 현재 러시아성서공회의 성경 반포사업을 위해서 한국 성서공회에서도 협력하고 있으며, 현재 러시아성서공회의 출판 책임자가 11월 13일부터 22일까지 한국 성서공회를 방문하여 연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미국이나 유럽의 선교 단체들이 보내주는 성경들이 컨테이너를 통해서 도착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 러시아에 성경이 안 들어간 곳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들이 정보만 있다면 그리고 구입할 비용이 있다면 얼마든지 성경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비용만 있으면 다소 가격의 차이는 있다 할지라도 성경 구입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성경보내기 운동이 구소련 선교에 미친 영향이 큽니다. 저 자신이 그 운동에 혜택을 누린 자요, 이미 경험한 바입니다. 현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보고하고 있다.위의 보고에서 보는 대로 그 동안 대한성서공회와 소련선교회 그리고 각종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의 위험을 무릅쓴 헌신적인 사역으로 성경이 구소련 각지에 보급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구소련 안에도 아직 정치적 또는 경제적 사정으로 또는 전달자의 부족으로 성경이 현지인들의 손에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는 정부 당국에서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서적 특히 종교 서적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987년 중국 남경에 설립된 애덕인쇄소에서 중국어 성경과 한글 성경이 인쇄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인쇄한 성경이 지난 해 이미 1천만 부를 넘었고, 또 금년에는 대한성서공회의 지원으로 한글 성경 10만 부가 인쇄되어 조선족 동포들에게 전해진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북한은 성경의 전달은 물론 성경의 소유가 금지된 나라이다.한국교회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선교사들에 의해서 거저 받은 성경을 이제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세계 곳곳에 찾아가서 거저 전해주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출처: <성서한국> 1996년 겨울 42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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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성경 보급

생애 첫 성경을 받은 전 세계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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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제는 더 이상 학교가 무섭지 않아요!

르완다 사람들에게 학교는 무섭고 두려운 곳이다. 선생님 무섭거나 시험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지난해 르완다를 방문했던 엘렌 콘디(Ellen Condie)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르완다에서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끔찍한 1994년 대학살 사건에 있어서 교실이나 예배의 장소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대피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살 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아픔 때문에 르완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하지만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르완다를 조금씩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변화시켜가고 있는 교실이 있다.성서공회에서 파송한 ‘하나님 말씀 지키미’(GodSpeak Advocate)로 스물한 살 엘렌이 르완다를 방문했다. 엘렌의 일은 성서공회의 르완다 문자교실 사업을 알리고 모금활동을 돕는 일이었다. 르완다에서 지내는 한 달 여 기간 동안, 엘렌은 수업 준비를 도우며 현재 진행 중인 르완다 문자교실 사업의 사진을 찍었다. 그 과정 가운데 엘렌은 대학살사건의 끔찍한 이야기들과, 그 일이 르완다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가 얼마나 큰지 듣게 되었다.대학살이 있은 후, 르완다 사람들은 학교를 멀리했다. 죽음의 기억과 수많은 아픔이 학교에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가장들이 희생을 당했고,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맏이들이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국가의 기반조차 흔들렸고 학교에 입학하는 일 조차 어려워졌다. 슬프게도 희생자의 상당수가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학살 사건으로 나라의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나 학교는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오늘날 15세 이하는 의무교육에 해당하지만, 30세 이상의 르완다 사람들까지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성경 문자교실을 통해 변화가 시작되었다.르완다성서공회의 총무인 엠마뉴엘 카이주카(Emmauel Kayijuka)는 많은 르완다 사람들이 문자교실을 참여하여 읽는 성경을 통해 머리 뿐 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 깊은 곳까지 변화되고 있다고 말한다.르완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면서, 상대방을 용납하고 지난날의 도려내고 싶은 아픔들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종종 교실은 사람들이 대화의 장이 된다. 그리고는 내 이웃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르완다 성서공회는 지역 교회를 통해 지역 사회와도 함께 일한다. 각 교회에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수료한 헌신된 자원봉사자 그룹이 있다. 카이주카 총무는 좀 떨어진 지역 같은 경우는 정부의 교육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고 설명한다.2013년, 문자교실은 23,000명의 르완다 사람들과 함께 했다. 올해, 르완다성서공회는 여섯 개의 새로운 지역을 문자교실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2014년 말,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훈련을 받아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성경 문자교실을 통해 읽고 쓰는 방법을 15,720명의 르완다 사람들에게 전할 예정이다.많은 르완다 사람들에게, 지금은 배우고 움직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그들의 깊은 상처가 베인 곳,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교과서는 성경책이다. 아픔의 자리가 성경을 통해 치유의 자리로 바뀌고 있다.(출처: 호주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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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서 주일과 교회 - 임영빈

어떤 이들은 성서주일 하면 성서공회의 주일이라고 생각하여 성서주일을 지키지 아니하여도 아무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해에서 온 생각으로 곧 고쳐야 할 생각이다.성서주일은 성서공회의 주일이 아니라 성서의 주일 곧 우리 구속과 영생을 얻는 길을 주는 성서를 기념하는 주일이다. 성서주일은 성서공회가 생기기 전에 벌써 지켜온 주일이다. 성서공회가 생겨 성서 출판을 전문으로 하게 된 후에는 성서주일과 성서공회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생기게 되었지마는 성서주일은 여전히 성서의 주일이요, 성서공회의 주일은 아니었다. 성서주일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1년 52주일 중에 한 주일을 택하여 성서의 의의와 성서가 주는 은혜를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하여 정하여 놓은 주일이다. 이 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의 뜻, 그 오묘하고 감격한 뜻을 생각하고 그 성경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입고 영생에 들게 되고 부활하게 되었다. 그 성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갖게 되고 또 우리는 영원히 새로워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은혜가 감사하고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성경을 더욱 친하게 되고 성경을 더욱 정성과 열심을 받쳐 읽게 된다.성경의 존재를 감사하는 중에 성경을 출판하여 우리에게 공급하는 성서공회를 생각하게 되고 그 기관의 보존을 위하여 적은 정성의 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주일에 들어오는 헌금을 성서공회에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은혜를 감사하다가 생긴 일이지, 결코 성경은 제처 놓고 성서공회를 위하는 생각만으로 생긴 일은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교회나 신자는 성서를 기념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서에 대한 사랑이 커 가고 또 성서를 읽고 그 뜻대로 사는 일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성서공회를 기념하거나 말거나 그것은 큰 일이 아니지마는 성경을 기념하고 아니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존폐 문제요, 우리 신자의 신앙생활의 사활문제다. 성경을 모르는 교회, 성경을 모르는 신자, 생각만 하여도 모골이 송연하다.사하라사막을 여행하는 이들은 예전에 있었던 큰 도시의 폐허를 볼 수 있다. 거기는 훌륭하게 지었던 예배당 터도 있다. 그러나 터만 남았지 기독교에 대한 산 흔적은 없다. 여러 사람들이 알아낸 사실은 거기 교회에는 거기 말로 번역된 성경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경이 없는 그 교회는 허물어지자 터만 남고 교우들은 뿔뿔이 헤어지자 기독교 신앙을 찾을 길이 없어졌다. 그러나 아프리카 동쪽 바다에 있는 어느 섬에는 교회가 흥왕하고 성경도 있었다. 중간에 핍박이 심하여 교회는 황폐하고 신자는 숨어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핍박이 지나고 다시 자유의 시대가 될 때에 교회는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신자들이 성경을 가졌었기 때문에 그 고난 중에도 그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 성경을 읽는 중에 신앙―그리스도의 참된 신앙을 간직할 수가 있었던 까닭이다.무슨 일이 생기거나―공산당이 점령하고 다스리거나, 무신론자가 집권하고 횡포하거나―그것은 아무 상관없이 성경을 가진 교회, 성경을 가진 신자는 그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께 향한 충성심은 언제든지 식지 아니한다.성경을 가진 교회, 성경을 가진 신자는 적그리스도가 와도 분별할 수 있고 사이비(似而非) 신학이 범람(汎濫)하여도 속지 아니한다. 겨같이 불려 다니고 갈대같이 쏠리기 잘하는 교회나 신자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을 모르니깐 표준이 없고 성경을 모르니까 판단력이 없다. 그래서 줏대 없고 용기 없는 교회나 신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성서주일을 맞는 우리는 이 주일의 뜻을 깊이 깨달을 것이다. 깨닫고 성경 읽기를 게을리 말 것이다.교회가 살려면 성경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성경으로 그 신도를 가르치고 인도하여야 한다. 성경으로 그 신도의 생활지침, 그 사업지침을 삼게 하여야 한다. 교회는 무슨 일에든지 성경을 위주로 하여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한다. 그래야 교회는 능력을 얻어 살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신자로의 생명을 가지려면 성경을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중하게 여겨야 한다.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얻은 영감으로 모든 활동의 동력을 만들 것이다. 성경은 어떤 생활의 부문에는 필요하여도 다른 부문의 생활에는 필요치 않다고 하는 분리주의를 가져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우리 생활 각 부문에다 산 힘을 주는 원기소다. 성경을 따라 생활하면 어떤 생활에서나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성경은 옛날 책이라 현대에는 맞지 않는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새 능력인 것을 모르는 말이다. 변론으로 이런 생각을 반발하려는 것보다는 성경을 살므로 그 능력을 보이는 것이 좋은 웅변이 된다.성서주일에 교회와 신자는 성경의 의의, 그 고마움, 그 은혜를 기념하고 새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현대 한국을 살펴보면 물질적으로는 큰 발전을 하였다.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자동차가 길을 메게 다닌다. 입은 옷이 자르르하고 먹는 음식이 기름지다. 한국이 물질적으로 발전하지 아니하였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도덕면, 그 정신면을 보면 어떠한가?매일 신문에 큼직큼직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여 주는지 알 수 있다. 도덕이 썩고 정신이 삐뚜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정직하게 부지런히 일하여야 먹고 살기가 힘 든다. 그러니까 어떻게 쉬운 길을 찾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 나머지 도둑질을 하게 되었다. 도둑질까지는 아니하여도 속이기를 여반장으로 한다.속이지 못하는 사람만이 못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이 속이는 일이 크면 도둑질이 되는 것이다. 도둑질이나 속이는 것은 자기가 갈 정당한 길을 가지 않고 얻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정의와 등진 것이다. 여기에 복 받을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는 성서주일을 지키게 된 것이다. 성경의 뜻과 그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기념하면서 현대의 모든 추악한 형편을 살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때처럼 필요한 때가 또 있는가 하고 느끼지 아니하는가?이 모든 사회적 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가르쳐 줄 사명을 가진 교회와 신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말씀으로 깨끗하여진 교회와 신자는 이 사회적 병을 진단할 수 있고 또 그 병을 고칠 처방을 낼 수 있다. 그 진단의 방법과 그 진단으로 만들 처방은 다 성경에 있다. 이 성경을 기초로 삼고 있는 교회와 신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번 성서주일에는 교회와 신자가 다함께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고 교회와 신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우리는 주의 말씀을 전하는 데 선후가 없고 당파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주를 위하는 일편단심만 가지고 현대사회의 도덕병에 대한 희생적 책임을 느끼면 된다. 주를 위하여 이 사회를 깨끗이 하여야 하겠다는 아무 사심(私心)없는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성서주일을 맞아 우리 교회는 그 사명을 다 하였는가 반성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있는지 살피고 그 말씀을 전보다 더욱 더 친하고 사랑하기를 맹세할 것이다.(출처: <성서한국>1998년 3월 16일 11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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