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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만나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원문의 뉘앙스를 잘 드러냅니다

  안용성 (그루터기교회 담임목사)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짧은 문장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시대적 의의를 가지면서 동시에 원문을 더 정확히 옮길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짧은 번역문이 원문의 어순을 더 가깝게 옮기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가 요한복음 11:1-2입니다. 1 어떤 사람이 앓고 있었다. 그는 베다니의 나사로였다. 베다니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가 사는 마을이었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발라 드리고 주님의 발을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던 여자였다. 앓고 있는 사람은 그의 오빠 나사로였다.본문에는 그동안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은 나사로라는 새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마리아와 마르다가 함께 언급되고, 마리아는 베다니에서 주님께 향유를 발라드린 그 여자라는 설명이 더해집니다. 나사로를 두 여인의 형제로 소개하는 것은 독자들이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향유 사건은 뒤에 이어지는 12장에 나오고, 마리아와 마르다는 요한복음에서 아직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가지고 나사로가 누구인지 설명하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요?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으므로 요한의 독자들은 이미 공관복음서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 여인이 베다니에서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은 마태복음(26:6-13)과 마가복음(14:3-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누가복음(10:38-42)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언급되지 않고, 나사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만 읽은 사람들은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과 마르다-마리아 자매를 별개로 알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형제인 나사로에 관해서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여러분이 공관복음만 알고 요한복음은 처음 읽는 사람이라 가정하고 11:1-2를 다시 읽어봅시다. 본문은 이러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앓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사로이고 그의 집은 베다니입니다. 그런데 베다니가 어디냐 하면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는 곳이에요. 그리고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얼마 전에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어드린 일 알고 계시지요? 그 일이 일어난 곳이 베다니잖아요. 베다니에 사는 누구였을까요? 그 사람이 바로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에요. 그러니까 나사로는 마리아의 형제가 되겠지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본문을 어순에 주의하여 읽어보면 앞에서 말한 정보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제시하며 퍼즐을 맞추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런 뉘앙스를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어와 우리말 어순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개역개정』 요한복음 11:1-2)1 한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였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은 여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이다. (『새번역』 요한복음 11:1-2)요한복음은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이야기를 바로 이어지는 12장에 배치하여 두 사건을 인과관계로 연결합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은 죽은 형제를 살려주신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삼백 데나리온도 단순히 낭비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과 마리아의 향유 사건을 하나로 연결하는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이렇게 완성됩니다.

말씀을 만나다

새터민 대학생들도 말씀을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에 감사하며 -  박인희(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강사)2021년 11월, 대한성서공회에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성경이 꼭 필요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사 년 전부터 이화여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 공부를 하는 새터민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과의 만남은 처음에는 영어 성경 공부로 시작되었습니다. 탈북민 출신으로 이화여대에 들어와 남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이 친구들에게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습니다. 남한 친구들도 쉽지 않은 영어 수업이 새터민 친구들에게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섬기고 있는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새터민 친구들과 영어 공부도 하고 성경 공부도 하는 작은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화여대 대학교회의 새터민 성경 공부 모임>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때로 영어 성경보다 우리말 성경이 더 어려운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기존의 성경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와 문장을 사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개역 성경이 익숙한 저와 같은 신앙인들에게는 한문 투가 적당히 섞인 우리 옛글 성경이 왠지 정겹습니다. 성경의 고어적인 표현들은 어릴 적 고향 교회의 어르신들을 떠오르게도 하고, 옛 신앙의 선조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새터민 친구들에게는 이런 옛글 성경들이 오히려 잘 와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한국말인데도 성경책은 어려워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문화적 차이나, 또는 고대세계에 관한 지식이나 유대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러려니 짐작했는데, 정작 친구들의 문제는 성경의 언어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남한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옛 성경 역본들이 정답게 느껴질 수 없었고, 자칫 고루하거나 심지어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어투들은 오히려 성경을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지던 때,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바로 제가 찾던 성경이었습니다. 특히 존칭을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보다 본래의 예수님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새터민 친구들은 물론, 제 강의를 들었던 외국 유학생들에게도 이 성경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한 중국 학생은 서양 역사를 공부하다가 혼자 성경을 읽고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된 친구였는데 이 책을 받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유난히 어학 실력이 좋았고, 신앙심도 깊었지만, 이 친구도 한국말 성경책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특히 시편은 우리 옛말의 운율과 가락을 모르고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워 한국말로 된 성경은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좋은 성경을 선물하고 싶었던 차에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참 좋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지난여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가면서 이 성경을 소중히 챙겨 갔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성경 공부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우리 새터민 친구들은 지금은 저 없이도 자체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성경을 읽는 모임을 벌써 이 년 가까이 이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도, 못 만나는 슬픔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지친 마음도 견디고, 학업의 고달픔도 저녁에 조용히 모여 성경을 읽으며 이겨냅니다. 그러던 가운데 몇몇 학생들은 벌써 졸업도 했고, 원하던 회사에 취업도 했습니다. 서로 말씀으로 격려하며 대학 생활을 해나가는 우리 새터민 친구들의 아름다운 삶을 보며, 저는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디지털 링크로 편리하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아무 때나 주님의 말씀을 읽으며,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새터민 친구들에게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좋은 동반자가 됨에 감사드립니다. 

설교자료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성경 : 민수기 13장 30-31설교 : 김명헌 목사(의림교회)     오늘의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가 ‘a study of history’라는 역사학에 관계되어진 책을 기술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문명권을 21개의 문명권으로 나눈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이 문명권들이 어떻게 생성되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번영을 이루는지, 어떻게 쇠퇴하는지, 침체하는지, 해체되어지는지 등 여러 과정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독특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패턴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게 되는데, 타성에 젖은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은 사회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항상 창조적인 소수였음을 21개 문명권을 통해 똑같은 패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을 기록하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에 관계되어진 이 패턴들은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 세계 교회의 역사도 동일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생성되어졌는가, 또 어떻게 성장해갔는가, 어떻게 쇠퇴해갔는가, 그리고 어떻게 침체해 가는가, 나중에 교회 문을 어떻게 닫았는가 하는 것까지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생성되었다가 쇠퇴하고 사라져간다면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은 항상 있습니다. 창조적 소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놀드토인비가 역사를 바라볼 때에 몇 가지 도전 상황이 있습니다. 그 도전은 열악한 땅, 새로운 땅에 대한 현실이 도전이 됩니다. 갑작스러운 외적의 침입, 지속적인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 이런 도전들을 어떻게 응전하는가하는 문제가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이라고 하는 새로운 땅에 대한 도전이 나타났습니다. 기존에 있던 땅에 대한 척박함이 있습니다. 출애굽 한 다음에 광야에서 그 척박한 시간을 견뎌야했습니다. 아낙 자손들, 광야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노예생활을 하다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공격해 옵니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도전에 대해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1절처럼 이야기 합니다. 대중들은 타성에 젖은 익숙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창조적인 소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대한성서공회가 하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방관합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중들의 관심과 대한성서공회의 관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남에게 성서 주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120개국에 23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진 성경을 인쇄해서 나누어주는 데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성서공회가 세워진 후 창의 끝과 같이 창조적인 소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무관심이 있었지만 땀 흘린 사람들, 눈물 흘린 기도, 그리고 피까지 흘린 사람들의 헌신 때문에 대한성서공회가 오늘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개신교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신교도 우리가 복음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땀 흘리고 피 흘리고 목숨 바친 사람들의 헌신 때문에 오늘 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서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없이 많은 땅에 대한 도전, 외세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대한민국이 이토록 성장하는 데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할 때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 순위 중 꼴찌에 해당되어질 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 경제 대국에 들어설 정도로 대한민국이 성장할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대한성서공회를 통하여, 눈물 흘리는 새벽기도의 권사님들을 통하여, 창의 끝과 같은 작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세상과 한국교회는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담대하게 신앙의 고백을 외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십만명입니다. 그 수십만명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따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중은 관심 없습니다. 대중은 협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대중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지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소리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3500년 전 광야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를 듣는다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올라가겠다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아니면 대중과 함께 정신 나간 일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대중에게 현혹당합니다. 내 앞길만 생각하여 정신 나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대중의 편협되어진 소리에, 타성에 젖은 소리에 익숙해져있는 이유는 있습니다.   33절을 보면, ‘거기서 내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열두지파의 대표 열두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옵니다. 중악 산악 지대의 길을 톻해 이스라엘을 정탐하고 오는데, 거기에 아낙 자손들의 후예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쟁하면 100전 100패입니다. 이런 사고 속에는 31절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31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사람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는 그들이 보기에 메뚜기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성서공회가 120개 나라의 234개 언어로 인쇄를 하여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과가 오기까지 이렇게 될 것을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루십니다. 끊임없이 세상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믿음에는 역사가 따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칭찬을 합니다. ‘당신들은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망의 인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대한성서공회의 믿음에는 역사라 따르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큰 교회를 이루는 것, 꿈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헌신으로 누군가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면, 나의 헌신으로 누군가가 예수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헌신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한 나라 한 민족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진다면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 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어떻게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135,000명의 미리암 군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올 때, 기드온 용사는 3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놀드토인비가 40년의 대작을 마치면서 딱 한소리 합니다. “세상은 도전과 응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끊임없는 도전 속에 믿음의 응전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택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뜻을 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2년 8월 23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모잠비크와 태국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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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말씀

성경 : 시편 119편 49-50설교 : 안희성 목사(평안교회)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미사일 공습으로 시작된 두 나라 간의 전쟁이 어느덧 벌써 4개월여가 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언론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처럼 보금자리가 파괴되어 갈 곳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다치고 전쟁 참전과 피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TV로 전쟁의 소식을 보고 듣는 우리가 보기에도 그 참상과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실제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돕는 손길들이 가까이 국경을 맞대고 이웃해 있는 나라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각계각층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의 손길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원은 식량, 의류, 약품, 돈, 무기 등 일상의 삶에 필요한 구호품들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전쟁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내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한편에서는 전쟁의 고통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것 같으면 실제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이나 의류, 돈과 같은 구호품들을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구호품들이 당장 여러 가지 부족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에 필요한 것들은 채워지면 어느 정도 부족함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또 부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신의 부족함은 물품들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공허하고 두렵고 불안한 생각과 마음은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 없고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떠한 것보다 그들의 영혼의 갈증과 부족함은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무너진 건물과 집은 다시 세우면 되고 부족한 것들은 채워 넣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워진 영혼의 고갈은 전쟁이 끝이 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과 영혼의 평화는 세상 물질로 채워질 수 없고 오직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에서 주님이 만난 여인은 외롭고 영혼이 고갈된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들의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었고 물질로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나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도 결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하고 외로웠던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고 인생의 참 만족과 행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함 가운데 있는 그들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그들 안에 있는 공허함과 두려움과 불안함은 사라지고 주님의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고백했습니다. 자신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시편 기자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난 중의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말씀이 자신을 살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망과 위로,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소망과 위로입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가운데 현지 주민이 전한 말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러시아가 무수한 미사일과 대포로 전쟁과 상관없는 국민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중했던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게 함으로써 절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드는 이 고통 속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하고 일상의 삶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진정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들에게 참된 소망과 진정한 위로를 주고 그들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생명이시고 부활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고 그들을 살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고 그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그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위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에 그들은 다시 소망을 갖게 되고 위로를 경험하고 살리심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담긴 이 성경이 그들의 손에 들려지게 되고 눈으로 읽게 될 때에 모든 영혼들이 되살아나고 구원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2년 6월 28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성경 기증 예식 중 전한 설교입니다.

말씀을 만나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학부 수업,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간담회 개최

 임성욱(연세대학교 교수)  2022년 5월 10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필자의 학부 수업인 ‘텍스트와 해석’ 시간에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번역연구소 이두희 소장의 발표>  먼저 수업 전반부에 이두희 소장(대한성서공회 성경번역연구소)의 발표를 통해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의 의미를 소개하는 시간이 진행되었다. 이두희 소장은 우리말 성경 번역의 역사와 성경 개정의 필요를 중심으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출판의 역사적인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각각의 성경 번역서마다 주안점이 다른데, 특히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경우에는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번역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였다. <간담회 참석자들의 모습>  다음으로 수업 후반부에 필자는 조지윤 국장(대한성서공회 성경번역연구소)의 협조 아래 연세대학교 학부 학생들이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읽고 그 번역에 대해 평가,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60여 명의 수강생들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마가복음 1장, 로마서 1장, 디모데전서 1장을 차례대로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자신들이 느낀 점을 솔직하게 발표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탈권위적인 번역이 예수님의 실제 사역에 더욱 적합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또 다른 일부 학생들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젊은세대에게 친근한 좋은 번역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은 이두희 소장이 강조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번역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 수업을 통하여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번역의 주요 독자층인 디지털 다매체 시대의 젊은 세대가 직접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기존의 성경 번역과 비교하며 읽으면서 새로운 성경 번역의 의미를 느끼고 공유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앞으로도 대한성서공회와 현장 사이의 생생한 대화가 기대되는 바이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   

말씀을 만나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으로 청년들과 함께 말씀 행진~!

 최재선(영락교회 청년부 목사)  청년들과 함께할 겨울 수련회를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친한 지인 목사님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의 기나긴 기간 동안 젊은 청년 세대들은 모이지 못하고, 봉사나 선교도 나가지 못하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예배하고 교제하는 힘들고 메마른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시기를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의 가장 최고의 본질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년들의 영혼과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고 채워질 수만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이며 설레는 영적 사건이 될 것인지 생각만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가장 먼저, 기도하며 청년부 임원들과 이러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청년 공동체의 성경통독에 대한 도전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함께 읽는 일에 거부감을 갖거나 거절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청년들을 참여시키고, 실제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시간을 공동체와 형제자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일련의 시간을 거쳐, 겨울 수련회가 진행되기 바로 전까지인 2022년 2월 7일(월)에서 24일(목)까지 총 18일 동안, 주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9시 30분에 온라인 Zoom으로 청년들이 함께 모여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으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독하자는 데 결론이 모아졌습니다. 정말 우리 영락 청년 공동체를 위하여 번역된 것과 같이, 젊은 세대를 위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적시에 출시가 되었기 때문에 기쁨은 배가되었습니다.  <온라인 Zoom으로 진행된 성경 통독 사진>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온라인으로 통독하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접근하니 모두의 마음이 기대감으로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청년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 무장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행진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영적인 비전과 푯대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먼저, 통독할 4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장수를 살펴보니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요한복음 21장, 사도행전 28장으로 총 117장이었습니다. 따라서 18일 동안 통독하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6-7장을 읽어야 했습니다. 청년 임원들은 총 117장을 통독하기 위해 각 장을 읽을 117명의 청년들과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멘토단)을 섭외하였습니다. 한 사람당 한 장씩 실시간 온라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성경 본문의 장을 읽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영락 청년들의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통독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늦은 저녁 시간, 직장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청년들이 몇 명이나 참여할까 걱정 반 기대 반의 시간을 초조하게 보냈지만,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을 말씀의 자리로 인도해 주셨고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매일매일 생각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 말씀을 통독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녁 9시 30분에 시작된 통독은 최소 1시간에서 평균 1시간 30분 정도, 저녁 11시까지 매일매일 진행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청년들과 함께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통독하면서 느낀 점은 마치 살아 있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은 생동감과 몰입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태 신앙인으로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해 왔던 청년들도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와 새로운 감동으로 채워졌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으로 번역된 하나님의 말씀이 청년들의 입술을 통해 온라인으로 전달되어 퍼져 나갈 때 받은 공동체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의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통독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만나다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송영윤(포천중리교회 담임목사)    <포천중리교회 성도들>하나님 말씀을 새로 듣게 되다니!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성경이 번역되는 일은 교회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신앙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설레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우리말 바로 쓰기에 힘쓰신 이오덕 선생님은 글보다 말이 먼저고, 말보다 삶이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삶에서 말이 비롯되듯이 글은 말하듯이 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그렇게 했네요. 말하듯이 쓰여서 좋습니다. 읽기 편하고 얼른 이해됩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사도들의 말투가 느껴져서 어쩐지 그 자리에 있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존댓말을 쓰시네요!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습니다. “따님!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어요. 평안히 가세요. 병의 고통에서 놓여나서 건강하게 지내세요.” (막 5:34)제가 마치 출혈병에 시달리던 여자라도 된 듯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실 때는 엄한 분위기가 확 살아납니다. “지금 당신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쟁반의 겉은 깨끗이 하고 있소. 그러나 당신들 속은 빼앗으려는 욕심과 악함으로 꽉 차 있소. 분별없는 사람들!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시지 않았소?” (눅 11:39-40)그동안 가나의 결혼식 이야기를 읽을 때,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어딘지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그 대목을 “저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어머니?”라고 번역하여 새롭게 이해할 가능성을 열어 주었네요. 원문을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아직 소개된 적 없는 것으로 번역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을 때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한다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번역 원칙이 이런 경우인가 봅니다. 거북한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말씀의 의미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바울 사도가 쓴 서신서는 진짜 편지를 받은 기분이 듭니다. 특히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편지, 이른바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은 정이 묻어나네요. 더는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조금 쓰시게. 위장과 그대가 자주 앓는 병을 생각해서 말일세. (딤전 5:23)아들에게 신앙의 소중한 유산을 하나하나 정답게 일러주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나는 디도에게, 곧 공동의 믿음에 따라 나의 참된 아들인 그대에게 이 편지를 보내네. (딛 1:4)그러므로, 아, 내 아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지시게. (딤후 2:1)시편에서는 도치문이 자주 눈에 띄어 좀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원문의 어순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살리기 위한 번역이라는 대한성서공회의 설명을 들으니, 도치된 문장의 뜻을 다시 생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번역에서는 시인의 감탄이 대번 느껴졌어요. 보세요, 얼마나 좋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가요, 형제자매 함께 하는 것이! (시 133:1)새해를 맞아 주일마다 짧은 문제지를 교우들에게 드리고, 거기에 답을 달며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읽기 쉽다며 좋아들 하시네요. 교우들의 소감입니다. “전에는 성경통독을 다짐하고도 일주일도 못 넘겼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괜스레 뿌듯합니다.” “대화는 큰따옴표, 생각은 작은따옴표가 쓰여서 읽기 좋아요.”『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읽으면 그대로 이해된다는 점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드뉴스

새해 다짐, 성경일독!

  새한글성경 바로읽기

설교자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베드로전서 1:18–25설교: 최규환 목사(서울광염교회)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파트너가 되어 성경반포사역을 시작하여 갖는 세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이기 때문입니다. 3이란 숫자는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서울광염교회와 대한성서공회가 서로를 신뢰하며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반포하는 귀한 사역에 동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성경기증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또한 이 귀한 사역에 헌신하는 대한성서공회의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 7월 이란으로 페르시아어성경 1,770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9월에는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말라위 등 아프리카 3개국에 각 나라의 언어로 제작된 4만 권이 넘는 성경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으로 스페인어성경 18,000여 부를 보내게 됩니다. 이로써 총 8개 나라에 6만 여권의 성경책을 반포하게 되고 현재도 4개의 나라에 성경을 보내기로 확정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서울광염교회 성도님들과 대한성서공회가 하나 되어 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사역에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제작하여 반포하는 일을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만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내 생명과 존재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신을 찾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있다, 저기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힘과 능력 그 자체로는 결코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보여주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거듭남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성경을 온 세계에 반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였던 베드로는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1장 21절에서 이 편지를 받는 이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어떻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영광 받으신 그 사건은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증거이자 계시입니다. 생로병사라는 실존의 한계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죄사함과 구원과 거듭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 주어진 것입니다.사도 베드로는 18-2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18-20)."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인간의 타락과 범죄함에 있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는 은이나 금 같은 재물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선행이나 고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인 열심이나 의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만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속죄함을 위해 바쳐진 그 동물과 제물은 불완전한 것이었고, 완전한 제물과 완전한 제사를 통한 완전한 죄사함과 대속을 바라보고 소망케 하는 그림자이자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완전한 제물이신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인 말세에 이 땅에 ‘성육신'하심으로 우리들을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죄사함과 대속함을 위한 완전한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제물 삼아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깨끗게 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이 십자가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온 세계에 반포하고자 하는 이 성경입니다.마지막으로 사도 베드로는 23-2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능력입니까? 거듭남의 능력입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바로 이 성경에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품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거듭나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됩니다. 이 영생과 거듭남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것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고,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마치 풀과 꽃처럼 언젠가는 마르고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썩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하지 않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 말씀입니다. 시대와 세월을 초월하여 영원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힘써 전하고 반포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 서울광염교회가 후원하여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반포되는 스페인어 성경은 남미의 네 나라인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파라과이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성경을 통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그 땅에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그 땅에 전파되고 그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 위 내용은 2021년 10월 19일, 대한성서공회 용인 성서사업센터에서 니카라과, 볼리비아, 파라과이, 페루 스페인어 성경 기증 예식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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