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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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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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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하다.유대인들은 유대식으로,헬라인은헬라식으로,유럽인은 유럽식으로,아프리카인은아프리카식으로 대했다.마찬가지로 한국은 한국식으로 성경을 읽고, 배우고, 해석하고, 실천했다.

<사경회 : 한국 교회의 ‘유월절’>
초기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대할 때 종교적 경외심을 갖고 최상의 예를 표하였다.성경은 함부로 해서는 안될 종교적 경외와 예배 대상이었다.한말 평양에서 활동하던 ‘마들린’이란 한국인 전도부인은 “아이들이 훼손하지 못하도록 성경은 반드시 선반 위에 모셔 놓아야 하고 성경을 옮길 때는 항상 두 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의하면서 성경을 팔았다고 하는데,이는 동양 특유의 ‘경전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성경은 ‘두 손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 ‘경전’이었다.

이런 한국식 경전 문화를 잘 보여 주는 것이 사경회이다.요즘 사경회는 길어야 사흘,그것도 주일이나 수요일 저녁 예배를 끼고 해치우는 것으로 끝나지만,옛날 사경회는 아무리 짧아도 일주일이었고 길면 한 달이었다.선교사들은 농번기 때 이불과 양식을 짊어지고 수백 리 길을 걸어 사경회에 참여하는 교인들의 행렬을 보며 감탄하였다.개척 선교사 언더우드의 증언이다.

“한국인들은 며칠씩 걸어서 사경회에 참석하는데 왠만한 어려움은 거뜬히 견뎌내고 있으며 250명에서 많을 때는 1,180명씩 모여 열흘에서 열나흘 동안 성경을 배웁니다.”
평양 선교사 블레어는 한국 교회 사경회를 유대인들의 ‘유월절’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치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듯 한국 교인들은 그 때만 되면 모든 일상 생활을 접어 두고 오직 성경 공부와 기도에만 전념합니다.이같이 성경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 교회 전체가 하나되어 사랑과 봉사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부흥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이 점에서만큼은 미국도 한국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인들의 사경회 열정은 교회 부흥으로 연결되었다.사경회가1907년 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준 사실이다.

<성경을 외우는 맹인 전도자>
초대 교회 사경회는 형식에서도 달랐다. 마치 서당에서 경전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 훈장 앞에서 학동들이 천자문과 동몽선습, 소학과 중용을 배우듯 교인들은 인도자 앞에서 성경을 펴놓고 한 절 한 절 읽으며 배워 나갔다.

초기 사경회 공부도 성경 외우기로 시작되었다. 암송 문화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은 성경을 줄줄 외웠다. 선교사들은 이런 한국 교회의 성경 암송 문화에 대해 경이로운 찬사를 보냈다. 일제시대 감리교 협신신학교 교수를 역임한 데밍의 증언이다.

“개성에 맹인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들이 그의 눈이 되어 복음서 전체를 순서대로 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무 장, 아무 절이나 물으면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속장인데 그는 말씀 공부에 전념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사람은 매서인인데 성경에 통달하여 성경의 어느 구절을 읽든 그 장과 절까지 정확히 집어 낼 수 있습니다. 미국 교인들 가운데 이 정도 할 수 있는 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서양 생활에서는 이 곳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명상과 침묵을 통해 성경 배우는 깊은 맛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복음서 전체를 외우는 교인’은 개성의 전설적인 ‘맹인 전도자’ 백사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려서 맹인이 되어 개종 전에는 명복으로 이름을 날리던 점쟁이 백사겸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그 동안 점쳐서 번 재산을 정리하여 없애 버리고 지팡이 하나 잡고 전도 길에 나서 고양∙파주∙장단∙개성 등지에 많은 교회를 세웠는데, 훗날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되는 아들(백남석)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외워버린 것이다.

<살아있는 성경 녹음기>
‘성경 암송’은 한국 교인들이 받은 특별한 ‘은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 은사는 맹인처럼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교인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도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 수용소인 여수 애양원 사람들의 ‘성경 암송’이 유명했다. 일제 말기인 1939년, 애양원 사경회 강사로 참여했던 남장로회 선교사 뉴랜드의 증언이다.

“애양원 식구 전체가 모인 가운데 사경회 마지막 행사로 성경 암송 대회를 했습니다. 우리 외국인 선교사들이 환자를 상대로 성경 중에서 아무 곳이나 지정하면 그들이 그것을 외우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나온 환자는 신약 전체를 외우는 남자 환자였습니다. 그는 이 곳에 들어온 지 수 년 되었는데 이 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병도 병이려니와 흉폭하기 짝이 없는 거지 대장이었답니다. 그러나 이 곳에 들어와 성경을 접하고부터 사람이 변해 놀라운 기억력으로 성경을 외우게 되었답니다. 그는 시력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손가락도 없었고 아래턱도 반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행복한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요한계시록을 택했고 우리는 20장을 외워보라고 했습니다. 그가 외우기 시작하자 다른 환자들은 성경을 펴서 그가 한 자라도 빼먹지 않는가 손으로 짚어 가며 확인했습니다. 그는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그 다음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여자 노인이 나와 기쁜 표정으로 시편 23편을 외웠습니다.”

애양원의 ‘성경 암송’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양원 식구들은 지금도 매주 모여 성경을 암송한다. 애양원에서 ‘성경 암송반’을 이끌고 있는 양재평 장로는 19살 때(1942년) 이 병에 걸려 애양원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30살 때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손가락이 뭉그러져 점자도 읽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성경을 외우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시력까지 잃게 되자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 하소연했어요. ‘눈까지 가져가시면 절보고 무얼 하란 말입니까?’ 그랬더니 이런 음성이 들려요. ‘귀하고 입은 남겨 두었다.’ 그래서 성경을 듣고 외우기 시작했어요.”

그는 20년만에 신약 성경을 외워 ‘성경 녹음기’가 되었다. 신약 전체를 순서대로 줄줄 외울 뿐 아니라 “빌립보서 3장 12절”하면 즉시 그 구절을 정확하게 기억해 외운다. 그래서 애양원 방문객들은 성경을 줄줄 외우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은혜가 된다.

이같이 사경회에서 출발한 ‘성경 암송’ 문화야말로 한국 교회의 자랑스런 전통이다. 하긴 성경 암송대회가 있는 나라가 우리 나라 말고 또 있을까?

출처 : 2000년 성서한국 여름 46권-2호,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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