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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다에서 순교한 성서 번역자 아펜젤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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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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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H. G. Appenzeller) 목사는 1885년 4월 5일에 한국에 입국하여, 목사로 선교사로 교사로 한국 근대사의 개척자로 여러 방면에서 크게 기여하였다. 여기서는 ‘성서 번역자’로서 아펜젤러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

1885년 10월 13일자 아펜젤러의 편지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언더우드와 공동으로 한국어로 어떻게 신약성경을 번역할지 논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펜젤러는 입국 후 바로 언더우드와 함께 이수정역 마가복음을 개정하기 시작했고, 1887년 여름 이수정역의 개정판인 <마가의젼복음셔언ᄒᆡ>를 출간하였다. 1887년 2월 7일 언더우드의 집에서 성경 번역을 위한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헤론 등이 참석하였다.
아펜젤러 전기를 쓴 그리피스는 아펜젤러가 처음부터 한국 문자를 습득하여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했기 때문에, 1년이 못 되어 한국어 문자를 자신의 사상을 담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일상 언어처럼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아펜젤러는 1886년 4월 2일의 편지에서, 자신이 아직 다른 사람의 번역을 판단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1887년 12월 25일 언더우드는 처음으로 한국어로 설교를 읽었다. 본인의 생각을 어학선생 조씨에게 들려 주면 조씨가 적당한 한국말로 표현해 준 원고였다. 1888년 3월의 아펜젤러의 일기에는 한국어를 읽는 것과 올바른 문장 형태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1890년 1월 2일 아펜젤러의 연례보고서에는,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번역했던 누가복음의 개정판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으며, 이 작업은 거의 인쇄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아펜젤러는 1890년 3월 <누가복음젼>, <보라달로마인셔> 3,000부씩을 삼문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보라달로마인셔>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튼이 로스의 로마서를 수정한 것이다. (‘보라’는 ‘바울’의 중국식 번역이다.)
1891년 6월 상임성서위원회가 로스역 개정을 포기하고, 아펜젤러와 게일에게 새 번역을 하도록 하였다. 아펜젤러는 마태복음 번역을 시작하였고, 1892년 1월 20일 아펜젤러 번역 <마태복음젼>이 임시역본으로 30부 발행되었다. 이 해에 <마태복음젼> 1,500부(1,000부는 “하ᄂᆞ님” 역, 500부는 “텬쥬”역)가 발간되었다. 한국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번역된 첫 성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본문은 1900년의 구역으로부터 지금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까지 이어지는 성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893년 5월 16일 스크랜튼의 집에서 상임성서위원회가 열렸다. 위원회에서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트롤로프 5명을 번역자로 임명하였다. 1895년 아펜젤러의 <마태복음>이 수정되어 출판되었다. 존스는 이 번역을 “원문에 충실하고 문체가 간단명료하며 표현이 부드럽다”고 말하였다. 1900년에는 신약전서 전체의 번역이 완료되어 출간되었다. 아펜젤러가 번역을 한 본문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이다. 1900년 5월 5일 성서공회 주일, 아펜젤러는 정동교회에서 완성된 신약전서를 손에 들고 감격적으로 설교하였다.
“우리는 10년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신약전서의 한국어판을 완성하였습니다. … 이후부터 나는 성경봉독을 할 때는 이 책만 사용할 것이라고 회중 앞에 광고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책은 우리 주재 전도사와, 한문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아름다운 모국어의 장점에 눈 멀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00년 9월 9일 주일은 신약성서의 번역 완성을 기념하여 정동제일교회에서 공개 감사예배를 드렸다. 1902년 3월과 4월 아펜젤러와 게일은 아펜젤러의 서재에 모여서 고린도전서 7장까지 개정하고, 성경의 고유명사 3,000개를 정리, 작성하였다. 레널즈가 목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6월 한 달은 3인이 목포에서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하였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는 성서 번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목포로 가던 도중에 군산 앞바다의 어청도 근해에서 선박 충돌 사고로 순직하였다.
2012년 6월 10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사랑의 사도 헨리 아펜젤러 순교 110주년 추모 제1회 학술대회” 가 열렸다. 아펜젤러 목사의 후손인 캐린 울프 양은 인사말에서 “아펜젤러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 있다. 한글 성서 번역과 보급이야말로 ‘아펜젤러의 계획’이었고, 그를 통하여 이루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제는 한국어 사용자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아펜젤러의 꿈이었고 계획이었다.

출처 : 2012년 성서한국 가을 58권 3호, 6-7쪽, 전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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