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만나다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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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3-25본문
송영윤(포천중리교회 담임목사)
하나님 말씀을 새로 듣게 되다니!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성경이 번역되는 일은 교회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신앙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설레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우리말 바로 쓰기에 힘쓰신 이오덕 선생님은 글보다 말이 먼저고, 말보다 삶이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삶에서 말이 비롯되듯이 글은 말하듯이 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이 그렇게 했네요. 말하듯이 쓰여서 좋습니다. 읽기 편하고 얼른 이해됩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사도들의 말투가 느껴져서 어쩐지 그 자리에 있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존댓말을 쓰시네요!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습니다.
“따님!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어요. 평안히 가세요. 병의 고통에서 놓여나서 건강하게 지내세요.” (막 5:34)
제가 마치 출혈병에 시달리던 여자라도 된 듯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실 때는 엄한 분위기가 확 살아납니다.
“지금 당신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쟁반의 겉은 깨끗이 하고 있소. 그러나 당신들 속은 빼앗으려는 욕심과 악함으로 꽉 차 있소. 분별없는 사람들!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시지 않았소?” (눅 11:39-40)
그동안 가나의 결혼식 이야기를 읽을 때,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어딘지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그 대목을 “저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어머니?”라고 번역하여 새롭게 이해할 가능성을 열어 주었네요. 원문을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아직 소개된 적 없는 것으로 번역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을 때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한다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의 번역 원칙이 이런 경우인가 봅니다. 거북한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말씀의 의미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쓴 서신서는 진짜 편지를 받은 기분이 듭니다. 특히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편지, 이른바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은 정이 묻어나네요.
더는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조금 쓰시게. 위장과 그대가 자주 앓는 병을 생각해서 말일세. (딤전 5:23)
아들에게 신앙의 소중한 유산을 하나하나 정답게 일러주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나는 디도에게, 곧 공동의 믿음에 따라 나의 참된 아들인 그대에게 이 편지를 보내네. (딛 1:4)그러므로, 아, 내 아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지시게. (딤후 2:1)
시편에서는 도치문이 자주 눈에 띄어 좀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원문의 어순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살리기 위한 번역이라는 대한성서공회의 설명을 들으니, 도치된 문장의 뜻을 다시 생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번역에서는 시인의 감탄이 대번 느껴졌어요.
보세요, 얼마나 좋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가요, 형제자매 함께 하는 것이! (시 133:1)
새해를 맞아 주일마다 짧은 문제지를 교우들에게 드리고, 거기에 답을 달며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읽기 쉽다며 좋아들 하시네요. 교우들의 소감입니다. “전에는 성경통독을 다짐하고도 일주일도 못 넘겼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괜스레 뿌듯합니다.” “대화는 큰따옴표, 생각은 작은따옴표가 쓰여서 읽기 좋아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은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읽으면 그대로 이해된다는 점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