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스라엘에서 땅을 점령하여 지키는 일은 민족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일차적으로는 종교적인 문제였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땅을 약속하시고 군대를 이끄셨으므로, 사람들은 전쟁을 하나님의 일로 여겼고 그런 만큼 거룩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출14:14;
17:16;
수5:13-15). 그리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것이 예배와 종교의식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자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야 했는데, 예배에 참여할 때처럼 정결해야 했다(
신23:9-14;
삼상21:4-5. '
정결한*'). 그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리고(
삼상7:9) 보통은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것(
삿20:23,
27-28)도 전쟁 준비에 속했다. 하나님 자신이 실제로 행동하시는 분이시므로(
수10:4;
삿4:14) 병력의 규모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삿7:2,
7). 하나님은 두려움이 적들을 덮치게 하심으로써(
수2:9;
10:10. '
하나님이 두렵게 하심*') 전세를 뒤집으신다. 마침내 모든 노획물은 정당한 승리자이신 하나님께 넘겨드려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
진멸*'이라고 한다.
디글랏빌레셀 3세가 즉위함으로써(주전 745년) 앗수르의 팽창 정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복 지역에서는 앗수르의 국가 신을 신들 가운데 첫째로 섬겨야 했고, 정치 및 문화를 이끌어 가던 상류층은 이주당했고 낯선 상류층이 이들을 대신했다. 이러한 위협에 부닥쳐서 수리아 팔레스티나 지역의 작은 나라들은 공동으로 앗수르에 맞서려고 했다. 이 반 앗수르 동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나라가 수리아와 북 이스라엘(에브라임)이었다. 유다의 아하스 임금은 동맹에 합류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동맹을 맺은 다메섹의 르신 임금과 사마리아의 베가는 주전 733년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 아하스를 몰아내고 자기들이 믿을 만한 사람을 새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다. 아하스는 이사야 예언자가 전해 준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신뢰하지 않고 앗수르 임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에게 굴복하여 조공을 바쳤다. 이 정책으로 아하스가 바라던 대로 되어 동맹군은 예루살렘에서 물러갔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정책은 치명적이었다. 곧 디글랏빌레셀이 그 해에 갈릴리와 요단 동쪽 땅을 북 이스라엘에게서 분리시키고 주전 732년에 온 수리아를 앗수르의 지방 영토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또 유다는 앗수르의 봉신 국가가 되어 앗수르의 국가 종교를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왕하16:10-18).
이 말은 "칼, 공격하다, 치다, 싸우다, 다투다"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전쟁은 구약 시대에 고대 근동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사건이었다(
삼하 11: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의 땅 "
가나안"을 주신 것이 그들과 맺은 하나님의 "
언약"의 한 부분이었으므로 그 땅에 대해서 위협하는 대적은 바로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삿 5:31;
삼상 30: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에 나가든지(
삼상 23:4;
왕하 3:18) 혹은 다투지 말든지(
신 2:5) 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마치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는 무사처럼 생각되고(
출 15:3;
시 24:8;
사 42:13;
암 2:9), 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하기 위한 도구로 전쟁을 사용하는 것으로(
사 5:26-30;
렘 5:15-17), 또는 다른 민족을 훈련하는 것으로(
사 13장;
렘 46:1-10)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구약 선지자들은 전쟁의 염오(厭惡)를 말하고 영원한 "
평화" 시대를 대망한다(
사 2:1-5). 신약에서 전쟁이란 말은 단지 은유적으로 사용되거나(
엡 6:11-17), 혹은 마지막 때의 전쟁으로 기술되고 있다(
계 20:7-10).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땅이나 상속으로 가늠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