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한 주간에서 그 이레째 되는 날로서, 일하는 것이나 불필요한 활동이 금지된 거룩한 휴식일(
출 20:8;
신 5:12). 본래는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출 31:14), 이 형벌은 잘 시행되지 않았다. 예수는 안식일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권위를 주장하였다(
막 3:1-4).
안식일은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증명할 수 있는 7일로 된 주의 마지막 날이다. 안식일을 강조하는 것은 그 이전의 본보기들을 따른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매월 15일을 재난의 날로 보고 '샤팟투'라 불렀는데, 이 날에는 일을 쉬고 기도와 참회의 고행으로 신들을 달래야 했다.
엘룰*월과 마르케슈완월에는 7,14,21,28일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날로 통해서, 이런 날에는 일정한 행동들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스라엘의 안식일 계명도 처음에는 일을 쉬는 것만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그 까닭은 분명히 달랐다(
출20:9-11;
신5:12-15). 그렇지만 일곱째 날은 - 아마도 또한 이 날 드리는 예배의 영향을 받아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점점 더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 되었고 포로기 다음의 시대에는
할례*와 아울러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에게서 구별하는 표이자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의 표가 되었다(
창2:2-3;
출16:23,
26;
20:8-11;
31:12-17;
사56:1-8). 신약 시대에는
서기관*들이 안식일에 어떤 일이 금지되며 어떤 경우에든 허용되는 일은 어떠한 것들인지에 대해 상세하게 확정했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안식일에는 '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만 갈 수 있었다. 이삭을 자르기만 해도 이를 안식일에 하지 못할 수확 작업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막2:23-24 참조). 안식일에는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에만 치료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확정해 놓은 바들을 어기심으로써(
막2:28) 안식일의 본 뜻을 되살리셨다. 곧 안식일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한 숨 돌릴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신 자비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이다(
막2:27;
3:4). 관련용어 :
안식년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 규정에 따라서 한 유대인이
안식일*에 자기의 거주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리를 가리키는데(
행1:12), 2000규빗, 곧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이다. 관련용어 :
안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