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을 들어서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이야기의 한 형식. 비유는 보통 한 가지 주요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별개의 영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비유는 예수의 가르침의 한 특별한 방법으로서, 그 주요한 것은 천국에 관한 것(
마 13:3-52)과 자신에 관한 것(
요 6:35;
14:6 등)이 있다. 천국에 관한 것은 직유(直喩)로, 자신에 관한 것은 은유(隱喩)로 그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가장 넓은 뜻으로 보면 비유는 사물을 구체적인 모습에 빗대어 말하는, 아주 여러 종류의 표현을 뜻한다. 우선 단순한 비교 (직유)가 이에 속하는데, 곧 해설할 사물을 '…처럼', '… 같이'라는 말로써 무엇에 빗대어 말하는 경우이고(
마10:16의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다음으로 은유 에서는 해설할 사물을 바로 무엇에 빗댄다(
마5:13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좁고도 본격적인 의미의 비유 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보통 또 늘 거듭되어 일어나는 사건을 이끌어다가 해설할 사물을 그것에 빗대어 이야기 형식으로 자세히 설명한다(이를테면
막4:26-32에 나오는 씨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비유,
눅15:4-10에 나오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발견하는 비유). 이와는 달리 우화 (독일 말로 '파라벨')에서는 일회적이고도 특수한 경우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이를테면
마20:1-15;
눅15:11-32;
16:1-8). 비유와 우화에서는 각각 비교할 점 또는 요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세부적인 것들을 다 자세히 풀이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이를테면
눅15:8의 '집을 쓸며'). 이와 다른 경우가 풍유 (독일 말 '알레고리')이다. 여기서는 이야기에 처음부터 은유로 쓰인, 그러니까 그 자체로 다른 무엇을 상징하는 개별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이 개별적인 요소들의 뜻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전체 진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이를테면
막12:1-12).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여러 개는 이미 일찌감치 풍유로 이해되어 해석되었다(
막4:3-9를
4:13-20과, 또는
눅14:16-24를
마22:1-14와 견주어 보라). 마지막으로 따로 한 무리를 이루는 것은 모범 이야기 이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경우를 보기로 들면서, 말하려는 내용을 제시하고 그것을 본보기로 따를 것을 권하거나 겁을 주어 그렇게 하지 않게 하는 데 쓰이는 이야기를 가리킨다(이를테면
눅10:29-37;
12:16-21;
16:19-31;
18:9-14). 예수께서는 비유로 이야기하시는 방식에 있어서 당시의 율법사들과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러 비유는 가까이 다가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에서 드러나는 절박하고 진지한 특성을 전적으로 띠고 있었고 그 선포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이런 비유들로써 예수께서는 듣는 사람들에게 함께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며 다르게 생각하라고 호소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