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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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부분적으로 유대교의 본보기를 좇아 한 무리의 장로*들이, 또 부분적으로는 - 헬라의 결사 단체에 있는 특정한 직책들을 본뜬 듯한데 - 감독*들 및 집사*들(빌1:1; 딤전3:1,8)이 이끌어 갔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교회 지도층이 한데 어우러진 경우에는 장로들의 임무와 감독들의 임무가 구별되지 않았다(행20:1720:28과, 또 딛1:5딛1:7과 견주어 보라). 감독들도 처음에는 협의체의 임무를 수행했다(빌1:1). 신약 시대가 지난 뒤에 비로소 교회 지도층의 여러 가지 형태가 서로 뒤섞이고 합쳐져서 한 사람의 감독 아래 장로들의 모임이 있고 거기에 집사들이 덧붙는, 고대 교회의 직무 질서가 완전한 꼴을 갖추게 되었다. 관련용어 : 교회, 감독
그리스도
처음에는 신분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서 히브리어 "메시야"에 대한 그리스어. 그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 예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보내신 구세주와 주가 되시므로 그리스도라 불리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헬라 말로 '크리스토스')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하고 메시야*를 표현하는 히브리 낱말을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는 본디 칭호였지만 이미 신약 성경에서 자주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예수 그리스도'). 그렇지만 이 낱말이 본디 지녔던 칭호의 특성은 그 뒤로도 여전히 효력을 끼쳤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점을 의도적으로 분명히 하는데, 특히 - 순서를 바꾸어서 -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말할 때 그러하다. 예수님의 온갖 칭호와 존칭('인자*', '주*')에 해당되던 바가 특히 메시야 그리스도 칭호에 해당된다. 곧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다음에서야 또 그것을 근거로 하여 이 호칭이 마지막으로 분명해졌고 그 뜻하는 바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다시 사신 분에게 이 칭호를 쓰면서, 다른 모든 칭호와 존칭은 옛 내용을 없애고 그 대신 새로운 - 궁극적인 - 내용으로 채움으로써 정화시키는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개념이 예수께 적용되면서 그 내용이 마지막 때에 완전히 채워진 것이다. 이제 이 개념으로써 선포하는 것은 더 이상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어떤 메시야가 아니라 먼저 또 무엇보다도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과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나서셔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시기 시작한 메시야이시다(막15:26병. 롬3:24-25; 5:6; 8:34,39; 14:9,15; 고전1:13,17,23; 2:2; 5:7; 8:11; 15:3 같은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도 칭호나 이름의 쓰임새 참조). 요일5:1에서는 '그리스도'가 '아들*'과 같은 뜻을 지니고, 예수께서 요1:1-18이 뜻하는 바처럼 사람 되신 구주이신 것을 표현한다. 관련용어 : 메시야
나도/ 나드
식물로부터 만들어진 값비싼 향료. 막 14:3에 의하면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이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나드[나도 기름]
히말라야 지역에서 자라는 어떤 식물의 뿌리에서 뽑아낸 물질로써 만든 향유인데 쉽게 증발한다. 그처럼 먼 나라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매우 비쌌다(막14:3-5; 요12:2-5의 '나드', 아4:14의 '나도', 아1:12 '나도 기름' 참조). 관련용어 : 향료
"주의 길", "주의 도"를 보라.
도벳
예루살렘 가까이 있는 힌놈 골짜기에서 몰록* 종교의식을 치르던 곳(왕하23:10; 렘7:31-32; 19:6,11-13).
도장
편지나 다른 문서의 발송자를 증명하기 위해 식별되는 표지(標識)로 찍은 밀랍, 납 또는 다른 재료의 조각. 또한 이 표지를 찍는 데 사용된 반지나 원통(창 38:18; 41:42). 열 수 없도록 봉하는 표시로 도장을 찍기도 하였다.
도피성
옛 중동 전체가 그랬듯이 이스라엘에서도 본디는 지방 성소의 제단마다 피난처가 되었다는 점은 출21:13-14의 규정에서 아직 알아볼 수 있다. <신명기> 개혁의 과정에서 산당 성소를 없앰으로써(를 보라) 비로소 중앙 성소 말고서도 지방 여러 곳에 도피성을 더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민35:9-34의 지시와 그것을 수행한 사실에 대한 수20-21장은 <신명기> 개혁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19:1-13의 규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관련용어 : 피의 보수[복수](자), 복수
마게도냐
'마케도니아*'를 보라.
마케도니아
오늘의 그리스의 가장 북쪽 부분인데 아드리아에서 에게까지 펼쳐져 있다. 마게도냐는 알렉산더 대왕(주전 336-323년)의 고향인데, 알렉산더의 영토는 거기서 인더스 강까지 미쳤다. 신약 성경 시대에는 로마의 지방 영토였는데, 수도는 데살로니가였다.
본디오 빌라도
주후 26년에서 36년 사이에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다스리는 총독으로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았다. 그의 공관은 해안인 가이사랴에 있었으나, 예루살렘에도 주택을 가지고 있었다.
브라이도리온
이 낱말이 신약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문맥에서 쓰인다.1. 예수님이 재판받으실 때 예루살렘에 있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집무처(막15:16병. 마27:27; 요18:28,33; 19:9에서는 '관정'이라고 번역했다)를 가리키는데, 이것이 오래 전부터 성전 광장 북서쪽의 안토니아 성채와 같다고 여겨왔지만 성읍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헤롯 왕궁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참조).2. 행23:35에 따르면 바울은 지중해 연안 가이사랴에서 '헤롯 궁'(곧 '헤롯의 브라이도리온')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곳은 로마 총독(당시는 벨릭스)의 관저로 쓰이던 곳이다.3. 빌1:13에서는 이 낱말의 뜻이 <빌립보서>의 저작 장소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에베소라면 브라이도리온은 로마에 속한 지방 영토 아시아의 총독 관저였겠지만, 로마라면 시위대 병영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하며(<개역한글판> 성경은 이 입장을 취해서 '브라이도리온'을 '시위대'로 번역했다), 지중해 연안 가이사랴라면 2번의 경우처럼 된다.
빌라도
주후 26-36년에 유다를 다스린 로마 총독*. 관련용어 : 총독
사도
어떤 특권을 받은 대표로서 보냄을 받은 사람. 보통은 예수께서 그를 특별히 따르는 자로 택하신 열두 제자나, 그의 사자로 보낸 자들. 또한 바울과 그 외의 복음 사역자들을 가리키기도 하며, 히 3:1에서는 예수에 대해서 "사도"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사도
'사도'(내보냄받은 자)라는 칭호는 유다의 '보냄받은 자' 제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보냄받은 자는 특정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그를 보낸 사람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았다(마10:40; 눅10:16; 요13:20).1. 원시 그리스도교에서는 우선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남자들에게 이 칭호를 붙였던 것 같다. 여기에는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고전15:5)와 바울(고전15:8-10; 9:1; 갈1:1)과 또 다른 사람들(고전15:7. 롬16:7 참조)이 들어간다.2. '사도'들의 동아리는 12제자 동아리와 일단 구별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열둘*'을 세우심으로써(막3:14,16해설 참조) 12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셨다(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유다와 베냐민의 두 지파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숫자 12에는 또한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완전해지리라는 약속이 들어 있다. 계7:4-8 참조). 그렇지만 <누가복음> 및 누가의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라는 칭호가 제한적으로 12제자에게만 쓰인다(눅6:13). 부활의 증인들은 또한 예수님의 지상 생활에 대한 증인들이고 예수님에 대해 처음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의 신뢰성을 보증할 수 있어야 한다(행1:21-22,26; 2:42).3. 행14:1,14에서 누가가 넘겨받아 쓰는 사도 개념은 안디옥 교회에서 형성된 개념이고 또 하나님이 부르셔서 교회가 내보낸 선교사들을 가리킨다(행13:1-3 참조). 이 사도 개념은 고전12:28; 엡4:11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4. 무엇보다도 3번에서 대강 말한 사도 개념은 그 영적인 자격과 회중에게서 비롯된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경우에는 쉽게 남용될 수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런 '거짓 사도들'과 다투어야 했다(고전11-12장, 특히 11:5,13; 12:11. 그렇지만 계2:2도 참조). 고대 교회에서는 상당히 빠르게 누가의 사도 개념(2번)이 통용되었다. 그렇지만 바울을 언제나 사도로 인정했고 그의 두드러진 중요성 때문에 베드로와 동등하게 여겼다. 관련용어 : 사도 훈령
사도 훈령
누가의 서술에 따르면 엄격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사도 공의회에서 결정한 규정을 가리키는 말(행15:19-20,28-29 참조). 바울은 행15:19-21,28-29에 따라 거기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한 의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고,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지키도록 규정한 의무가 자기에게 해당된다는 점에 대해 갈2:6에서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자기 교인들에게 행15:20,29의 규정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 규칙을 제시한다(고전8장; 10:23-11:1 참조). 행21:25로 미루어 보면, 바울은 나중에서야 예루살렘에서 결정한 내용을 알게 된 것 같다. 이리하여 행15:19-21,28-29의 의무는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모인 (바울이 참석하지 않았던) 모임에서 의논하여 결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석가들이 더러 있다. 이 모임에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살 때 생기는 구체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풀려고 했는데, 이것들은 사도 공의회에서 원칙적인 결정을 내린 뒤에 일상 생활의 실제에서 드러난 문제들이었다는 것이다(갈2:11-16 참조). 그런데도 사람들은 되돌아보면서 이 두 모임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고 마침내는 - 두 모임의 결과를 한데 간추려 - 단 하나의 사건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건들을 본다면, 이는 행15:23-29의 편지는 본디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행15:23), 곧 제한된 범위의 교인들에게 보낸 것이지 바울과 그의 선교 지역을 직접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과 잘 어울릴 것이다. 관련용어 : 사도
선지자의 생도들
문자적으로는 '선지자(=예언자)의 아들들'인데, 예언의 은사를 받은 남자들, 곧 예언자 계층의 구성원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았다는 증거는 무엇보다도 엘리야와 엘리사 때에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이들은 바알 종교와 벌인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엘리사 자신이 그런 예언자 공동체 안에서 살았던 것 같다(왕상20:35-42; 왕하2:3,5,7,15; 4:1,38; 5:22; 6:1; 9:1-10. 왕상18:3-4,13; 19:10,14 참조). 삼상10:5-12; 19:19-24를 보면, 이미 사무엘과 사울과 다윗 시대에 이와 비슷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무리들이 활동할 때 상당한 역할을 했고 부분적으로는 일정한 연습과 '기술'로 이를 수 있는 무아경의 환상들(삼상10:5-12; 19:19-24; 왕하9:11; 렘29:26 참조)은 그 당시 주변 종교를 믿던 비슷한 무리들에게도 찾아볼 수 있어서 이스라엘 신앙의 독특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왕상18:26-29의 바알 예언자들과, 더 나아가서 암7:14의 '선지자의 아들' 참조). 겉으로는 이런 예언자들의 대표자를 털옷('겉옷*')과 가죽 허리끈(왕하1:8; 슥13:4; 마3:4)으로, 더 나아가서는 머리를 둥글게 민 것(왕하2:23)과 경우에 따라서는 이마의 표(왕상20:41 해설 참조)로 알아볼 수 있었다. 관련용어 : 예언자
성도
"거룩한 이들"이란 뜻을 가진 말의 표현에 대한 전통적인 번역으로서, 천사나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명사로서는 항상 복수로 쓰이며, 집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성도
'거룩한 자*'를 보라.
수로(수도시설)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급수원은 기드론 골짜기 비탈에 있는 기혼 샘이었다(아래 내용에 대해서는 -4 참조). 솔로몬 시대부터 히스기야 임금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기혼 샘물을 다윗 성* 기슭에 드러나 있는 수로를 따라 남쪽으로 끌어 쓴 듯하다. 사8:6의 '실로아* 물'이 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물은 성읍 언덕의 남쪽 끝에 있는 저수지로 흘러 들어가서 주로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임금의 동산에 물을 대주었다. 사22:11의 '옛 못'은 이 묵은 저수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이 에워싸였을 때 적군이 기혼 샘에 손을 뻗치지 못하게 하고 그 물을 성벽 안에서만 쓸 수 있게 하려고 히스기야 임금은 기드론 골짜기의 샘 입구를 막고(왕하20:20; 대하32:2-4,30. 그 뒤에 사람들은 이 입구를 잊어버렸다가 중세 후기에서야 다시 발견했다), 샘에서 시작하여 바위가 많은 성읍 언덕에 굴을 파서 모든 물을 새로 만든 '아랫못'(사22:9)으로 끌어들이게 했다. 이것을 '아랫못'이라 한 것은 이와 마찬가지로 히스기야가 만든 '윗못'(이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 참조)과 대조가 되기 때문인데, 이 윗못은 옛 못 위쪽(북서쪽)에 있었다. 신약 시대에는 이 '아랫못'을 실로암* 못(요9:7,11; 눅13:4)이라고 불렀는데, 오늘까지 그러하다. 왕하18:17; 사36:2의 '윗못'은 지금까지 말한 여러 못 가운데 어느 하나와도 같지 않은 듯한데, 이는 그 여러 못 근처에는 이 두 구절에서 분명히 전제하는 바처럼 군대가 행진할 만한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윗못'은 오히려 히스기야 임금이 자기가 지은 새 성읍에 물을 대려고 그 성벽 앞 북쪽에 만들어 둔 큰 물 웅덩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여기 언급된 '수도'를 통해 그 '못'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사7:3에 따르면 히스기야 임금의 전임자였던 아하스와 이사야의 대화(사7:1-9)가 벌써 왕하18:17; 사36:2에서 말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윗못'이 이미 히스기야 이전에 있었고 성읍의 급수에 중요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주석가들은 사7:3에서 장소에 대해서 말할 때 의식적으로 왕하18:17; 사36:2에 맞추어 장소를 같게 함으로써 두 임금의 반대되는 태도를 더욱 더 똑똑히 드러내려고 했으리라 생각한다.
스도이고 철학자들
신 포도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건네받은 마실 것(막15:36병)은 신 포도주 또는 포도초인데, 이것은 심한 갈증을 두고두고 가라앉히기에 알맞아서 병사들이 보통 마시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건네받은 마실 것은 이것과 구별해야 한다(막15:23병). 그것은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성 첨가물(몰약이나 유향)을 섞은 포도주이다. 이런 마취성 마실 것을 처형에 앞서 건네는 것은 잠31:6-7을 따른 유대의 관습에 상응한다. 예수께서는 그 마실 것을 물리치셨다.
아구스도
'아우구스투스*'를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름*'을 보라. 관련용어 : 이름, 예수님을 뒤따름
전도자
'전도자'(행21:8), 전도인(딤후4:5), '복음 전하는 자'(엡4:11)로 번역하는 헬라 낱말은 본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 '승리를 알리는 심부름꾼'을 뜻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런 심부름꾼들이 시68:11('소식을 공포하는 여자'); 사40:9('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41:27('기쁜 소식을 전할 자')에 나온다. 가장 중요한 구절은 사52:7인데, 거기에 보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시온 산 위에서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하나님 나라*')라고 외치면서 구원과 평화를 선포한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낱말이 세 번만 쓰일 따름인데(행21:8; 엡4:11; 딤후4:5) 하나님에게 받은 특별한 재능과 결부된 교회 안의 한 직책을 가리킨다. 전도자의 임무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해 믿음을 일깨우는 것이다(행8:4-40에서 묘사하는 빌립의 활동 참조). 고대 교회에 이르러서야 이 개념이 특별히 사 복음서 기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관련용어 : 복음, 하나님의 나라
주기도
주기도가 마6:9-13에서는 긴 형태로, 눅11:2-4에서는 짧은 형태로 전해 내려온다. 긴 형태의 주기도는 그 자체로 이미 예배의식에서 사용되어 상당히 고정된 형식을 띠게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이것을 교회에서 받아들여 일반적으로 쓰게 되었다. 2세기 첫 무렵의 교회 규범에 보면 벌써 여기에 예배를 마무리짓는 송영이 덧붙어 그만큼 더 길어지는데, 이 송영은 대상29:10-11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는 이 송영이 신약 성경의 나중 사본들에서도 <마태복음>의 주기도를 맺는 말로 나온다(<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이를 마6:13 하반절에서 괄호 안에 넣었다).
주의 길/ 주의 도
구약에서 "주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의 율법에 복종하는 것이다(창 18:19; 왕상 3:14; 시 95:10; 사 58:2; 슥 3:7; 말 2:8-9). 신약에서는, 기독교 운동에 대한 표현, 예수 신앙으로 보이는 삶의 원리 등을 나타낸다(행 18:25-26; 19:9,23; 22:4; 24:14,22).
지도자
"통치자"를 보라.
포도주 틀
포도송이를 발로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큰 통이나 구덩이.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계 14:10).
포도즙 틀(을 밟는 자)
옛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송이를 맨발로 밟아서 즙을 짜냈다. 여기서 사63:1-6에 나오는 포도즙 틀 밟는 자의 비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은 < 독일성서공회판 해설성경전서 >
는 < 굿뉴스 스터디 바이블 >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