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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히브리 이름 예수아(그 긴 꼴은 여호수아)를 헬라 말로 적은 것.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해 주신다"('예'와 '여'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이름 '야훼'가 있다. '여호와*'). 마1:21에서는 시130:8과 관련시켜 '구원'을 죄와 죄의 결과에서 건져내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관련용어 : 이름, 예수님을 뒤따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름*'을 보라. 관련용어 : 이름, 예수님을 뒤따름
예수님을 뒤따름
유다 랍비*의 제자들은 교육을 받는 동안 스승의 가정에 소속되어 스승과 함께 배움 및 삶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공적으로 나설 때는 스승이 맨 앞에 서고 제자들은 알맞은 거리를 두고 스승의 '뒤를 따랐다'. 예수께서 나타나시는 모습은 숱한 점에서 이런 랍비가 제자들의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나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렇지만 예수께는 정해진 '가정'이 없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떠돌아 다니며 불안정한 가운데 살라는 지시를 받았다(마8:19-20병). 제자들은 통상적으로 그러했던 것처럼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었고, 스승과 마찬가지로 또 스승과 함께 물질적으로는 전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것을 믿으면서 살았는데, 하나님은 예수께 그리하셨듯이 이들에게도 특별한 방식으로 '아버지'가 되셨다('아바*', 마6:9,11,25-34; 10:9-10; 12:1). 사제 관계나 뒤따름의 관계가 생기는데 주도권은 - 보통 그렇듯이 - 지원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잡으신 것이어서, 예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막3:13; 요15:16) '부르신다'(막1:16-20; 2:13-14). 이 부르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온갖 세속적인 안전장치와 깊은 인간 관계를 끊어버리게 하시고 인간의 온갖 타당하고, 심지어는 '거룩한' 권리와 주장과 의무도 절대적으로 무력하게 하실 수 있다(막1:16-20; 2:13-14; 눅9:59-62; 마10:37. 왕상19:19-21, 더 나아가서 마12:46-50; 19:10-12 참조).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 생활을 정리해야 하고(막8:35병; 눅14:26), 자기를 '더 이상 알지' 말아야(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멸시당하고 범죄자처럼 처형당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막8:34병; 마10:38병).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적이 그렇듯이 - 그리고 그 모든 것과는 달리 또 그것들보다 더 많이 - 제자들의 무리는 하나님 나라*가 동터 온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이고 그런 뜻에서 이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요, '산 위에 있는 동네'이다(마5:13-16). 예수님 안에서 그랬듯이 제자들의 무리 안에서도 세상은 - 한창 돌아가고 있는데도 - 이미 그 종말에 이르렀다. 다가오는 새 세상의 힘과 법칙이 사라져가는 낡은 세상 안으로 이미 뚫고 들어와 효력을 나타내고 있다. 자기들의 존재와 생활 방식으로 동터 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언하는 제자들은 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고 증언하도록 예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예수님의 사명과 활동에 참여한다(막3:13-15; 눅9:1-6; 10:1-12,16). 스승을 뒤따르는 제자의 길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띠게 되었다. 뒤따르기로 한 근본적인 결정과 그에 뒤따르는 실천은 그때그때 정도를 달리하여 구체적인 요청과 현실적인 요구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나 순교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12:21-22), 누구나 예수님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며(눅10:38-42; 요11:1-3), 모두 소유를 철저하게 포기하는 길이나(마27:57; 눅19:2,8) 독신 생활의 길로(고전7:7; 9:5) 갔던 것도 아니고, 모두 말씀을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것도 아니다(눅9:1-2; 10:1. 행13:1-3 참조).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각오하고 있다가 상황이 요청하고 주께서 부르시면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은 모든 제자의 삶의 무조건적인 전제이자 결론이다(눅14:25-35). 그 어떤 경우이든 예수님의 제자는 이미 하나님의 새 세상에 속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하지만(눅12:32-34; 요17:14-16; 고전7:29-31) 이 세상에 대해 자신이 아주 깊은 책임을 지고 있는 줄 아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는 사라져 가는 이 세상 안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오심으로써 동터 오른 저 새로운 현실에 대해 증언할 빚을 이 세상에 지고 있기 때문이다(마5:13-16; 요17:17-19; 벧전2:11-17; 마17:24-27). 부활하신 주님께서 위탁하신 바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마28:19) 하신 것이었다. 이는 사라져 가는 세상, 죄와 죽음의 표가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의해 규정되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세상의 구성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곧 세례*받을 때 그리하듯이(마28:19하반절. 롬6장; 골3:1-4 참조) 전 생애의 기초를 새로 놓고 방향을 새로 잡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마28:20상반절)을 뜻하는데, 이는 우선 무엇보다도 산상수훈(마5-7장)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제자가 되어 뒤따른다는 것은 부활 이후의 사건으로서, 받은 세례를 근거로 살아가고 예수님 안에서 또 예수님과 함께(마28:20하반절 참조) 예수께서 지시하신 길로 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원칙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받는 부르심이어서, 뒤따름의 요청은 (부활 전과 마찬가지로 부활 후에도) 모두에게 해당되고, 그것이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그 결과 <사도행전>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라고 부른다(행6:1-2,7; 9:1-2,19,25-26,38; 11:26,29; 13:52 등). 관련용어 : 예수, 이름
예수님의 계보
1. 마태 (마1:1-17)는 예수님의 계보를 숫자 상징법을 밑바닥에 깔고서 작성했다. 히브리어의 각 자모에는 수 값이 있다. '다윗'이란 이름을 나타내는 히브리 자모들이 지닌 수 값을 다 합하면 14가 된다. 계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이 열 네 대로 이루어지게 함으로써(마1:17) 마태가 선포하려고 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이 예수님이라는 인물로 나타나셨다는 점이다. 숫자 상징법을 살리려 하다 보니 8절에서 요람과 웃시야(=아사랴) 사이에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 세 임금을 빠트린 듯하다(대상3:11-12 참조). 눈에 띄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거나(라합, 룻) 죄인으로 통했던(다말, 우리야의 아내) 여자 네 사람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계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죄인들도 들어 있으므로, 이스라엘 아닌 사람들과 죄인들도 처음부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마28:19; 9:1-3 참조). 가장 중요한 사본들에서는 아사(7절)와 아몬(10절) 대신에 아삽과 아모스가 나온다. 그렇지만 이 두 이름은 대상3:10,14와 어긋난다(왕상15:8 등; 왕하21:18 등도 참조). 이 두 사람을 예수님의 계보에 받아들였다면, 이는 <시편>(시50편; 73-83편의 아삽 참조)과 예언서<아모스>에서 예고한 바들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암시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2. 누가 는 눅3:21-22에서 예수님의 인격에 담긴 하나님의 비밀을 밝힌 뒤에 3:23-38의 계보를 통해서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인류의 역사에서 차지하시는 위치를 나타내려고 한다. 이 계보의 밑바닥에도 숫자 상징법이 깔려 있는데, 이번에는 숫자 7과 12의 뜻이 중요하다. 곧 이스라엘 및 인류의 역사를 모두 77(7세대씩 11부분)세대로 만들어서 그 근원이신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예수님을 새로운 부분, 곧 열두 번째 부분의 첫머리에 둠으로써 예수님에게서 인류 역사가 완성되게 한 것이다. 예수께서 실제로 다윗의 자손이시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근거해서 확정되어 있고(롬1:3 참조),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 속한다는 사실, 곧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예수께서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이 세 가지 고정된 점을 빼고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계보는 세부적으로 엄청나게 서로 달라, 오늘까지 이를 설득력 있게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어느 것이 바른지를 입증할 수 없다 하더라도 두 계보는 예수님의 구원이 뜻하는 바를 각각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구원의 의미에 대한 신앙 고백은 믿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두 계보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이런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 중요했으리라고 생각하는 주석가들이 많다. 관련용어 : 예수, 이름
예수님의 무덤
예루살렘 둘레에서 발견된, 바위에 파놓은 여러 굴 무덤이 무거운 맷돌처럼 굴릴 수 있는 돌로 입구를 막았던 예수님의 무덤일 것으로 추측해 왔다(막15:46; 16:3. 요11:38-39도 참조). 안에는 벽을 파서 돌 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죽은 자들을 뉘어놓았다. 돌 침대를 다시 쓸 때는(보통 그랬다. 그렇지만 마27:60; 눅23:53; 요19:41 참조), 완전히 부서져버린 뼈들을 거두어 묘지에 붙어 있는 구덩이에 던지거나 따로 준비해 둔 그릇(납골통)에 모아둔다. 요11:44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은 나사로의 '수족을 베로 동여' 놓았다. 요19:40에 따르면 예수님에게도 이와 비슷하게 또 유대 풍습에 맞게 한 듯하다. 이로써 죽은 자들을 일부러 '묶어두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지만 이 풍습에 대한 자료는 유대교 문헌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관련용어 : 예수, 이름
은 < 독일성서공회판 해설성경전서 >
는 < 굿뉴스 스터디 바이블 >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