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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맺어준 부부 - 김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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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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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연관된 재미있는 얘길 나는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다. 일본에서라는 말도 있고 중국 땅에서 생긴 거라고 하기도 하고 역시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있었던 실화란 말도 있다. 하도 오래된 얘긴지라 어디서 생겨서 내 귀에 머물게 된 건지 그 시기도 또렷하진 않다. 따지기에 앞서 그 내용이 드라마틱하니까 이 얘길 부흥회를 나가서 아침 성경공부 시간이나 밤 집회에서라도 지루할 듯싶으면 꼭 예화로 들곤 한다.

얘기의 시작은 이렇게 뚜껑을 연다. 어느 곳에 여자성경고등학교가 있었다. 그곳 기숙사에서는 10대 후반의 여학생들이 모여서 생활을 함께 했는데 하루일과는 꽉 짜여진 공동체 활동이었다.

하루의 시작은 채플에서 새벽기도회를 갖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불이 켜지고 꺼지는 걸 눈독 들여 보고 있는 어떤 이가 있었다. 도선생, 즉 도둑이었다. 며칠을 두고 망을 보고 디데이를 정했다. 텅 빈 기숙사를 털기 위해 그날 새벽 혼자서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가정집을 대상으로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훔칠 게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탐나는 물건도 없었다. 여학생들인지라 옷가지 얼마를 주섬주섬 모아 돌아왔다. 혹시 주머니 속에 헌금이라도 있을까 기대하고 가져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맨 먼저 손이 간 곳은 주머니였다. 돈이라곤 동전닢 몇몇 부스러기뿐이고 빈주머니였다. 허탕을 친 거라 생각하고 다시 다른 옷을 들었는데 짧은 여학생 코트에 손이 닿는 순간 돈뭉치가 잡히는 듯싶었다. 주머니를 찾아 손이 들어가자마자 손바닥만한 게 잡혔다. 꺼냈다. 돈뭉치가 아닌 책이었다. 빨갛게 가죽으로 표지화된  포켓성경이었다. 도선생은 그 책을 휙 던졌다. 그날은 허탕이라 생각하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천장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곤 담배 한 대를 피우려고 윗목에 두곤 했던 담뱃갑을 잡는다는 게 조금 전 팽개친 그 포켓성경이 또다시 손에 잡혔다. 누운 채로 무심코 책을 폈다. 펴자마자 눈에 들어온 활자는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였다. 성경 중에서도 로마서 13장 9절이 똑똑하게 그의 눈에 보여진 것이다. 다시 재수없다는 식으로 책을 휙 던지고 말았다. 방바닥 구석으로 팽개친 것이다.

그 후 그는 도둑질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도적질하지 말라’라는 생생한 소리가 머리에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몇 차례 남의 집에 침범하려고 들어가려는 순간에도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그의 발걸음은 결국 뒤로 돌아서곤 했다. 그는 기분이 나빴다. 재수없는 그놈의 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난 후에는 도둑질을 안 해도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도둑질, 남의 물건훔친 놈, 누군가 자신을 나무라는 듯 괴로웠다.

그는 결국 그 포켓성경을 다시 찾아 이까짓 책이 뭐길래 나를 괴롭히나 싶어서 처음 읽은 그곳을 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찾질 못했다. 그 구절을 찾으려고 뒤적뒤적거리다 보는 듯 마는 듯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좋은 말씀이 담긴 성경임을 깨달았고 수년 후에는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그는 회개를 하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새 삶은 기쁨이요 감사였다. 그는 항상 포켓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무슨 일을 할 때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성경을 만지면서 길도 걷고 일도 했다. 습관처럼 성경은 언제나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틈만나면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도 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성경학교에 입학하여 시골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나이도 30이 훨씬 넘어서였다. 이제는 결혼도 해야 할 때, 노총각 전도사로선 교회 아낙네들 대하기가 어려워 아들처럼 사랑해 주신 목사님의 소개로 결혼을 했다. 처음 포켓성경을 접촉한 때로부터 13년이 흐른 후였다. 노총각 노처녀의 만남은 깨가 쏟아졌다. 그런데 하루는 부인이 남편 전도사님의 옷을 정리하다가 주머니 속에서 오래된 성경을 보고 갸우뚱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러나 기억은 나질 않았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 성경을 어디서 구했으며 언제부터 주머니에 넣고 다녔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남편 전도사는 얼굴이 잠시 상기되더니 이 성경책으로 연유된 지금까지의 사연을 간증하듯 들려 주었다. 그때 말하던 남편보다 부인이 더 넋을 잃고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원래 주인은 바로 그 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인 역시 주일학교에 다닐 적부터 이 작은 성경책을 아끼고 좋아했다. 그래서 늘 이 책을 휴대하고 다녀 손때 묻은 책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성경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이 책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신약만의 책이지만 여간 정이 든 게 아니라서 다른 어느 성경책보다도 더 마음이 끌리곤 했었다.

이 책을 잃어버린 후 돈 보따리나 보물을 잃은 것처럼 울었다. 같이 잃은 코트는 별로 생각이 안 났다. 그러나 그 책이 없어지고는 주머니에 손이 들어갈 때면 무언가 손에 잡혀 흐뭇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항상 허전해 했던 것이다. 성경을 잃은 후 1년 남짓 지난 후 그는 색다르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그 책이 불 속에 들어가 태워지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만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또 얼마 후에는 이 책이 누군가의 손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결국 그의 기도는 기도대로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 더 연극처럼 현실화된, 그 책으로 인연이 되어 부부로 맺어진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통해 재미있게 인생살이를 엮어낸 것이 어찌 여기에 나오는 이 두 사람뿐이랴. 너무도 아름답고 두고두고 교훈이 될 얘기는 참 많다.

(출처: <성서한국> 1995년 가을 41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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